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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3.25.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신명기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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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3월 25일 수요일




오늘 함께 읽은 부분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바로 직전까지의 역사 중에서 1장에 기록된 역사에서 이어지는 나머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문전에서 하나님께 반역하여 다시 왔던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서 주로 세일산 주변을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북쪽을 향해, 그러니까 다시 가나안 지역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길에서 만나는 족속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영토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려 주셨습니다. 어떤 족속들에 대해서는 싸워서 진멸하고 땅을 빼앗으라고 하신 반면에 어떤 족속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그들과 다투려고 해서도 안되며, 그 땅에 있는 그 무엇도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일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만날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이 아니고 이방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에돔족속이나 암몬족속과는 다투어서도 안되며 그들의 영토에 있는 것은 함부로 손을 대서도 안되고 양식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사서 먹어야 한다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은 아니었지만, 과정이야 어쨋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인 에서와 룻과도 언약을 맺고 복을 주셨고 또 그 땅을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는 다투어서도 안되며 가장 정중하게 그들을 대우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당사자들은 모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조차 신실하십니다. 그들에게 해주겠다고 하신 것은 꼭 해 주십니다. 최선을 다해서 선대하십니다. 비록 그 사랑의 종류와 크기는 자녀인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과 다를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사랑하시고 그래서 그들도 복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그들이 범한 심각한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작정한 아모리 족속들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사실 우리와 함께 사는 어떤 나라,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인지 구별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흩어져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항상 선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또 대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비록 그들에게 있는 죄는 죄로 분별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돔족속과 암몬족속들과 다투거나 그들의 소유에 손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들 몫의 복이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땅에 대해서는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라”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으셨습니다. 그래서 2장 마지막 절을 보면 모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가기를 금하신 모든 곳은 네가 가까이 하지 못하였느니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암몬 족속의 땅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고, 또 하나님께서 동서남북으로 결정해 주신 경계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은 모두 다 차지했습니다. 비록 아직은 요단 서편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요단 동쪽의 땅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지역은 다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 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과 너무 심하게 경쟁하거나 혹은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것을 모두 가지려고 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따로 있고, 주시지 않은 것이 따로 있으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 몫의 땅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차지해야할 땅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그 안에 있지만 가지려고 해서는 안되는 곳은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모세의 지도 아래에서는 그 한계를 정확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 몫의 복의 분량이 얼마만큼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또 우리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신 그들의 몫의 복의 분량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넘어가면 안되는 경계를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지 않은 것을 우리 것으로 취하는 잘못을 저지르기가 쉽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우리의 욕심을 다스리고 승부욕을 절제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능력 위주의 사회이고 그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무엇이든지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만큼은 그런 생각을 따라서 살면 안됩니다.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또 불가피하게 경쟁을 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이미 남의 손에 있는 것까지 빼앗으려 들어서는 안됩니다. 제가 아는 한 장로님은 지역에서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 쪽 업계에서는 일가를 이루신 분이십니다. 아주 성공한 분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렇지만 어떤 집사님은 그 장로님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떨었습니다. 자기가 그 장로님이 하시는 사업분야 중에서 지극히 작은 부분에서 어렵게 개발을 해서 같은 제품을 내놓았더니 갑자기 덤핑판매를 하는 바람에 사업이 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피치 못할 경쟁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남이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게서 나에게 허락하신 선 바깥으로 넘어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 몫의 복까지 빼앗아 자기 몫을 챙기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몫의 복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게 애쓰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셨던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몫으로는 너무도 충분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몫 이상의 것을 손대고 또 차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손해와 상처를 입히는 악한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충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자신의 욕심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미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서 우리의 욕망이나 필요, 그리고 복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경계를 넘어가는 악한 일을 저지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족한 줄 아는 마음이 없으면 별 유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내 몫을 책임져 주시며, 나의 삶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시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믿고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와 똑같은 하나님의 형상인 다른 이들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면서 욕심을 통제하며 다스리는 능력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세워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