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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03.29. 주일오전 - 인자가 온 것은(2015년 종려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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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10장 35-45절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그것을 환영하려고 나온 사람들이 그 환영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서 흔들며 ‘호산나!’를 외친 데서 유래한 이 날의 이름입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계셨고, 사람들 또한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예수님께서는 흔히 왕들이 타는 말이 아니라 나귀새끼를 타고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는데요. 그 모습은 분명히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게 했을 것입니다. 다 큰 어른이 큰 나귀도 아니고 나귀새끼를 탔으니 탄 듯 안 탄 듯, 분명히 나귀 위에 계셨지만 다리는 땅에 끌리는 채로 오히려 나귀를 다리 사이에 놓고 나귀를 끌고 가시는 모습을 했을 것이니, 아마도 그 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만들어 내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예수님을 환영하는 환호로 시끌벅적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첫번째 종려주일은 모든 사람들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했던 그런 날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날처럼 아니러니한 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기쁜 환영 속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왕이신 예수님은 그 날 부터 극심한 고난과 고통 가운데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게 될 것이며, 결국 그 십자가를 보좌로 삼아서 온 세상의 왕의 자리에 오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때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이제 드디어 저렇게 백성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하는 왕이 오셨다고 기뻐하고 즐거워 하기만 했지요. 그러나 오늘 우리는 우리 예수님이 어떤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어떻게 해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우리의 왕이 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부활주일 직전의 주일을 종려주일로 지내는 동시에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로 기념하며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온 우주의 왕이 되시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는 가장 높은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기도 하셨습니다. 아니 그랬기 때문에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실 수 있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의미에 대해서는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지만 사실만큼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지금 이스라엘을 구원할 약속된 메시야, 다윗과 같은 왕이 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이제 자신들과 가장 친한 예수님이, 자기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왕이 되시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은 뻔합니다. 예수님은 왕이 되어서 함께 일할 신하들을 세울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알고 또 예수님과 가까운 자신들이예수님의 최측근, 가장 높은 자리에서 예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었죠. 그렇지만 아직 누가 어느 자리에 앉게 될 지는 전혀 결정된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사이에서는 말은 안해도 과연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될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져만 갔고, 그것은 궁금증을 넘어서서 서로 간의 긴장과 알력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선수를 칩니다. 정확하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말하지 않고, 우리가 어릴 때, 꼭 가지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부모님들에게 사용했던 꼼수를 썼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무엇을 달라고 하든지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두 사람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하는 요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는 제자들을 불쌍히 여기겼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지금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요구하고 있구나.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겠느냐?” 예수님께서 마실 잔은 예수님의 고난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받으실 세례는 예수님의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것을 단지 예수님께서 왕위에 오르시기 위해서 거치셔야 할 약간의 난관쯤으로 이해했습니다. 두 사람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어쨋든 로마를 처부수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위대하고 강한 왕이 되실것이 분명했으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은 너무나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까짓 것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미 두 사람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잘 알고 있었던 예수님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제자가 많이 측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 너희 말대로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게 될 것이고 네가 받는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누가 내 좌우에 앉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구나. 그 자리는 누구를 위해서 준비되었든지 그 사람들이 얻게 될 거다.”


듣고 있던 나머지 열 명의 제자들은 두 사람에게 화를 내며 다투었습니다. 자기들도 내심 똑같은 것을 원하고 있었는데 선수를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켜보던 예수님께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여전히 다투고 있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마치 먹을 것을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우는 아이들을 불러다가 훈계하는 부모처럼 말입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예수님께서는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얘들아, 로마의 권력자들이 그들 마음대로 사람들을 좌지우지하고 그 고급관리들은 그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것. 너희들도 잘 알지 않느냐? 그들은 왜 그렇게 할까? 그것은 그들은 그렇게 해야 자신이 높아질 수 있고 또 그 높은 자리를 붙들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나라에서는 그 방법이 통하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통하는 방법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너희들 중에서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지? 요한 너냐? 그렇다면 너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 식탁에서 섬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너희들 중에 누가 제일 높이 올라가고 싶어하지? 야고보 너냐? 그렇다면 너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야. 내가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을 얻으려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사실 나는 너희들 모두가 내 나라에서 꼭 가장 높아지기를 원한단다.”


자기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로마의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높아져서 로마와 똑같은 방식으로 힘을 가져 보려고 했던 제자들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가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이 말씀은 주님은 분명히 온 세상의 왕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높아져 권력을 휘두르는 그런 왕이 아니라 낮아져서 섬기는 왕이 되기 위해서 오셨으며,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대신 내어주시기 위해서, 그만큼 낮아지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대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예수님의 높아지심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왜 예수님께서 결국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다스시리는 왕이 되실 수 밖에 없으신지 그 이유를 알려주시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낮아질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특징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소망하는 하늘나라는 정말 멋진 나라가 아닙니까? 만약 하나님 나라가 이 땅처럼 높아지려는 사람이 높아지고, 힘있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할 수 곳이라면 그 곳은 이 땅과 다른 곳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곳이라면 천국이라고, 하나님 나라라고 불릴 자격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라면 소망할 필요도 없겠지요.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 나라일 수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온 우주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 셨지만, 이 세상 가장 낮은 자리로 가셔서 가장 낮은 죄인들을 섬기셨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나귀새끼를 타고서도 키득거리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껄껄껄 웃으실 수 있는 낮은 마음을 지닌 왕이 다스리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되고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이 되시고 심지어는 그 인간으로서의 목숨까지 죄인들을 위해서 내어놓으셨습니다. 가장 존귀하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셔서 가장 귀중한 것으로 가장 낮은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장 낮추는 사람이 가장 높아지는 곳인 하나님 나라에서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리는 예수님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이시고 왕이시니 그 지체되고 백성된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야 할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낮아지고 가장 많이 섬기는 사람들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가장 큰 칭찬을 받고, 가장 큰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영광을 얻은 사람은 이 영광을 스스로를 높이는데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영광을 다시 주님 발 앞에 내려 놓을 것이고, 또 주님과 함께 그 나라를 섬기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더욱 더 복스러운 나라가 되게 하는데 헌신하며 더욱 더 영광스러운 자리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는 예수님도 그렇게 하실 테니까요.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땅에서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습니다. 더 큰 힘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사용하며, 그렇게 얻은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사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어디서건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늘나라를 믿는다면, 이 곳에서의 삶은 잠시잠깐에 불과하지만 그 곳에서의 삶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래서 이 땅 위에서의 가장 크고 찬란한 영광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얻는 가장 작은 영광이 훨씬 더 가치있고 영광스럽다는 것을 정말로 알고 있다면, 더 낮아지고 더 많이 섬기는 자리로 가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유익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고, 이 세상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단 한 순간도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시거나 당신의 능력을 당신이 대접받고 당신이 인정받으시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삶과 모든 능력을 사람들조차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며 비난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셨고, 서른 세 살 젊은 생명을 그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주시기 위해서 온전히 내어주셨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이 세상 가장 낮은 존재가 되신 예수님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만물이 그 분 앞에 무릎을 꿇는 자리로  예수님을 높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겸손과 섬김의 나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낮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낮아져서 남을 섬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높아지려고 하고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으려고 하며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예수를 믿는 우리들 속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장 많이 닮아 있어야 하는 교회 안에서 조차 자꾸 높이 올라가려고 하고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힘이 있으면 어떻게든 그 힘을 자꾸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낮아져서 섬기는 사람들의 참된 가치와 영광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의 섬김을 받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더 가볍게 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의 이런 모습은 겸손의 왕,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으며, 십자가를 보좌로 삼아 왕위에 오르신 우리 왕이신 예수님과 어울리는 모습인지, 그리고 우리가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를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할 그런 삶의 방식인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교회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모아놓으신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들 중 것 하나는 바로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하늘나라에 어울리는 삶의 방식을 연습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이라는 하나의 책을 우리의 삶과 신앙, 그리고 존재의 교과서로 삼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런 우리가 모인 교회라는 공동체는 세상의 방식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연습하고 몸에 익힐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되 특히 성도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향해서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겸손을 연습하고 섬김을 연습해야 합니다. 그게 당장은 우리 몸과 성향에 맞지 않아도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연습을 해야 하고, 그 연습이 몸에 배게 해야 합니다. 그 반대가 되는 사고방식이나 본능과 싸워야 하며, 그런 마음과 습관들을 미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점점 더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어울리는 영광스러운 존재들로 스스로를 가다듬어 가야 합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다른 제자들보다 선수를 쳐서 예수님께 청탁을 넣었던 것, 그리고 그것을 보고 다른 제자들이 두 사람을 나무랐던 것. 그것은 사실 예수님께서 어떤 왕이 되실 것인지, 또 왕이 되어 다스리실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결코 선한 일이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나무라시기 보다는 차분하게 제자들을 교훈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신 겸손한 왕이십니다. 종이 되어 섬기시고 또 자신의 생명을 주어 자기 백성들을 살리시는 그런 왕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런 왕이 다스리시는 겸손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겸손이 최고의 영광이며, 섬김이 최고의 권력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지요. 그러니 더 이상 우리는 세상의 방식을 흉내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내가 사는 곳을 불편하고 갈등이 많은 곳, 서로를 향해 얼굴 붉히는 곳으로 만들면 안됩니다. 


종려주일이 모든 사람들의 기쁨의 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날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어린 아이들보다 낮아져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가 기쁨의 나라가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왕이 되셨고, 겸손의 왕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도 기쁨의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겸손이 모두의 기쁨이 되었던 이 날,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와 그 주변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그리고 나의 일터에,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 때문에 기쁨과 웃음이 더해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머리되신 우리 주님,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흉내내며 살아갈 때, 그 곳은 분명 첫번 종려주일의 예루살렘처럼 기쁨과 웃음이 더해지는 그런 곳이 될 것이며, 우리의 삶과 존재 또한 더 높여지고 영원히 영광스러워지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일을 기념하는 이 날, 어린 나귀를 타고 엉거주춤 껄껄 웃으시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예수님, 그래서 모두를 기쁘게 하셨던 그 기쁨의 왕,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의 그림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간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의 삶 위에 그 그림을 따라 겸손과 기쁨의 그림을 그려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교회를, 일터를 그 복된 그림이 그려지는 캔버스가 되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겸손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모든 사람을 복되게 했던 이 날, 우리에게도 주님 닮은 낮은 마음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나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기뻐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일이 새롭게 시작되게 하겠다고 결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많이 닮아서 하늘에서 그 분처럼 높아지고 영광스러워지는 복을 얻게 되기를 겸손의 왕이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