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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3.31. 새벽예배 -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실새(고난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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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누가복음 20장 1-18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성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자들을 성전에서 내어쫓으신 후에 그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실 때에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의 탐욕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깨끗하게 만드신 후,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그 사람의 탐욕으로 더럽혀진 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전해질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또 욕심으로 가득 차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와도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말씀을 듣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자기 자신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오히려 우리를 거스르게 되어서 우리를 진리나 하나님의 뜻과 더 멀어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내가 들은 말씀이 정말로 내 속에서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기 전에 먼저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먼저 우리 마음이 우리 자신의 생각과 욕심, 그리고 이런 저런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지 않은지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은 거기서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이것은 마치 새롭게 예쁜 가게를 차려 놓았더니 어느 날 동네 깡패가 나타나서 누구 맘대로 여기서 장사하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이나 비슷한 모습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기 전에 성전은 그 사람들의 놀이터 였습니다. 거기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막대한 돈도 챙겨넣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떡 하니 자리를 잡고 백성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니 그것을 그저 곱게 보고만 있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께 사실 누가 준 권위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전혀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보고, 그것이 성경의 진리와 맞는가 그렇지 않는가만 잘 평가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하신 일들도 그것이 성경의 원리에 맞는 일인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됩니다. 그게 진짜로 권위가 있는 자들이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과 말씀 자체 보다는 예수님께서 누가 준 권위로 그런 행동을 하고 말을 했는지 그것만 따져 물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단하게 이들을 쫓아 보내신 후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세를 주고 떠났더니 세를 받으러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나중에는 그 포도원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 주인의 아들까지 죽였던 악한 농부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물론 조금 전 예수님을 찾아온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저지르고 있고 또 앞으로 저지르게 될 악한 일에 대한 말씀이기도 했지만, 사실 왜 그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들과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히 일치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도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귄위 문제로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 대신 잘 돌보고 또 이끌어 가는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대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만을 얻게 되어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주인 대신 주인의 포도원을 맡아 돌보면서 거기서 나오는 소출의 일부를 새경으로 받는 농부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해서 착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사람들 쯤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주인으로 생각하고 싶어졌고, 또 진짜 주인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행동과 가르침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그러한 욕심에서 나온 것이고, 앞으로 예수님을 못 밖는 일도 똑같은 마음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바로 그 모든 것들을 꼬집으신 것입니다. 


사실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목숨까지도 하나님께 받은 것일 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 뿐만 아니라 살면서 자기가 얻고 또 사용하게 되는 모든 것들을 자기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런 욕심은 하나님을 믿고 나서도 좀처럼 버리기가 힘들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단 마음으로 듣기 힘들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래서 우리 맘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니까요. 


제가 지난 주일에도 섬김과 고난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만, 사실 요즘 성도들은 그런 설교 굉장히 듣기 싫어 합니다. 많은 경우 그런 설교를 하면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싸해집니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부담스러운 소리를 왜 하느냐는 불만을 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소유와 삶은 철저히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것이라는 세속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신앙을 물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대부분 하나님께 받는 것만 생각해 왔습니다. 복, 건강, 재물, 형통... 그런데, 그게 아무리 내가 받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것이 될 수 없고, 그래서 그것이 나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했습니다. 간혹 헌금에 대한 설교를 듣기는 했지만 그 역시 더 큰 복을 받기 위한 투자라는 설명과 함께 들었지요. 그래서, 성도들 조차도 나에게 주어진 것은 모두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나의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과 배치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면,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고 하기 보다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들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그리고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그런 생각에 반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말씀 때문에 마음이 더욱 더 단단해지게 됩니다. 그 마음 때문에 진리를 거부하고 진리에 순종하는 일을 포기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신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혹시 우리들 속에 여전히 그들을 닮아있고 포도원 농부들을 닮아있는 고집스러운 마음은 없는지, 그리고 그런 마음과 생각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또 우리의 주인이셨지만 온전히 당신의 것이신 생명마저 ‘내 것’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아낌 없어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불쑥 불쑥 고개를 들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항심을 만들어 내려고 할 때마다, 우리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시면서 그 시험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마음과 삶이 하나님의 진리가 맑게 울려퍼지는 성령의 전이 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