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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4.03. 새벽예배 -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2015 고난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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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마가복음 15장 1-20절




오늘은 흔히 성금요일이나 혹은 예수님의 수난일로 불리는 날입니다. 이 날 주님께서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다 받으시고 결국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배반당하히고 붙잡히셨으며 공회 앞에 서셨고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채찍질을 당한 후에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렇게 여섯 시간 후에 돌아 가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채 만 하루도 안되는 사이에 모두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우연히 일어나거나 혹은 예수님께 힘이 없어서 당하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있었던 일들이고 예수님께서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은 전부가 다 죄인인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속에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사랑이 들어있고, 그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하나 하나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악함을 온몸으로 받아내신 흔적이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제자인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고상한 이유도 아닌 그저 돈 몇 푼 때문이었죠. 유다도 예수님에게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자기 입장에서 가치가 없어지자 돈 몇 푼에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되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포기하지 않고 사랑한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이것보다 더 행하는 쪽에서는 악하고 당하는 쪽에서는 아픈 그런 배반이 또 있을까요? 


두번째로 예수님은 공회 앞에 서셨습니다. 그렇게 유다가 팔아넘긴 예수님을 사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 예수님을 불법으로 소집되고 진행되는 공회에 넘겼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경험한 죄악은 불의였습니다. 사람들이 공회, 그러니까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진 협의체를 만드는 이유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행해질 불의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오히려 이 공회를 이용해서 더 크고 잔인한 불의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불의한 이익을 추구하고 옳지 못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집단의 권위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소집도 진행과정도, 그리고 목적도 어느 것 하나 의로운 것이 없었던 공회가 바로 그 날 밤 열린 공회였습니다. 


세번째로 예수님은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유대인들의 손에 그들 마음대로 하라는 조건을 붙여서 넘겨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서 경험한 악함은 교활함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무엇이 옳은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는 아무리 뜯어 보아도 죽여야 할 만큼의 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군중 그러니까 자신에게 힘을 주고 부를 가져다 주는 원천인 사람들이 그것을 원치 않자 그는 로마의 총독으로서 놓아주어서는 안되는 사람을 놓아주는 대신에 스스로 죄가 없다고 판단했던 예수님을 폭도들의 손에 넘겨 주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교활함이라는 악을 온 몸으로 받아내셨습니다. 


네번째로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로마의 군인들 또한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만한 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런 사람들을 다루는 똑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을 잔인하게 채찍질 했고, 침을 뱉고 머리를 치며, 뺨을 때리며 조롱했습니다. 그렇게 고통과 모욕을 당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낄낄거리며 웃어 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남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하는 잔인함과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즐기는 비정함이라는 악을 감당해 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고 거기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도 죄인이면서 다른 사람이 죽는 과정과 순간까지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더 오래, 더 고통스럽게 할 방법을 연구하고 찾아내서 그것을 사용하면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만들어 낸 최악의 형틀이라고 불리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임을 당하셨을 뿐 아니라 그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마지막 날 주님께서 당하신 모든 일들을 이렇게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짊어지신 것은 단지 우리의 죄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죄가 만들어 내는 또다른 악과 그 악이 만들어 내는 고통들까지도 모두 짊어지셨고, 그래서 우리를 죄와 죄의 더 악한 결과들로부터 자유케 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득 이사야서 53장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의 죄만 짊어지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든 죄의 악하고 고통스러운 결과까지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우리의 어깨에서 치워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으로 우리의 허물은 벗어졌습니다. 그가 상함으로 우리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얻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죽음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우리의 죄와 그 죄가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모든 악과 고통들을 모두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 날,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그 하루 동안의 흔적 속에서 그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섬김을 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 모든 죄의 결과들도 스스로 감당하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 용서의 은총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자유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위해 죄와 관련된 모든 짐을 짊어 지신 우리 주님의 은혜를 많이 묵상하며 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죄 뿐만 아니라 그 죄들이 만들어 내는 악한 일들에 얽매여 살지 않겠다고 기도하시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가 우리들의 현실이 되어질 때, 우리를 위해서 오늘 하루의 고통을 온전히 감당하신 주님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죄 용서의 은총과 주님 주신 자유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