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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5.1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여호수아 21-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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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5월 13일 수요일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에 대한 땅분배가 끝났습니다. 모든 지파들이 제비를 뽑아서 모두 자기 몫의 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레위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원래부터 레위인들은 자기들 지파 몫으로 분배받을 분깃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의 분깃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십일조와 제물들 중에서 요제와 거제로 드려지는 제물들과 소제로 드려지는 곡식들 중의 일부분을 식량으로 공급받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레위인도 살아야 할 집은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지속적인 생활이 가능한 환경은 갖추고 있어야 하구요. 그래서, 비록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들처럼 한 곳에 모여서 자기 몫의 분깃을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지만 그것 때문에 각 지파의 땅 중에서 받기로 미리 약속되어 있는 거주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20장으로 넘어가면서 레위지파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약속하셨던 거주지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꺼이 자기 몫의 땅에서 주변에 목초지가 딸려 있는 성읍들, 그러니까 꽤 좋은 성읍들을 흔쾌히 다 내어 주었습니다. 이들이 레위지파에게 이렇게 좋은 땅을 내어 주었던 것은 레위지파가 특권계층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레위인들은 그 본 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제사를 드리며 재판관의 역할을 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파 사람들처럼 여기 저기 짐승에게 먹일 풀을 구하러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들 사이의 물질관계는 참으로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아무튼 뭐라고 뭐라고 해도 목회자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세속적이라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목회자가 자기 사례나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이것은 그다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목회자가 이미 충분한데도 더 챙기려고 자꾸 자기 몫을 늘려가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일 자체를 무조건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요즘의 목회자들이 레위인들은 아니지만 교회나 성도들과의 관계 면에서 보면 레위인과 비슷한 점이 많고 그래서 레위인들에게 적용되었던 원칙들 중에는 목회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일단 저는 이 목회자의 생활문제는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을 위해서 주신 지침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에게는 분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영구적으로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의 분깃이 되어 줄테니 너희는 나로 만족하라고 하셨습니다. 목회자의 삶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회를 해 보니 그렇습니다. 목사가 하나님을 분깃으로 삼아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그 목회자는 절대로 목회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자기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따라다니게 되고,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 넓게 적용해 본다면 경제 문제만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목회에 성공하기 위해서 목회를 열심히 하게 되어 있고, 명예를 위해서 목회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하나님을 분깃으로 삼아서 그 분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사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그러면 목회자의 생활과 관련해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요? 목회자의 분깃은 하나님이시니 그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공급해 주시도록 내버려 두고 그런 데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할까요? 제가 경험해 보니 한국교회 안에는 생각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성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꼭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레위인들의 분깃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의 필요를 채우는 직접적인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습니다. 각각의 지파가 자기 몫의 땅에서 가장 좋은 땅에 속하는 곳을 레위인의 거주지로 내 주었습니다. 그들의 양식을 위해서 십일조도 드렸고, 비록 제물의 형태이기는 했지만 고기도 공급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원칙 하나를 배웁니다. 목회자는 아무튼 자기 몫에 민감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분깃 되어주심을 믿고 그 믿음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와 교회는 항상 목회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적절하게 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저는 한국교회 속에서 참 이상한 모습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교회가 정상적인 모습이라면 이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는 적당한 수준에서 이만하면 충분하니까 더 이상은 필요 없다고 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최선을 다해서 목회자의 필요를 넉넉하게 채워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구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게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될 수 있는 대로 안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될 수 있는대로 이미 충분한 상태인데도 더 받기 위해서 애씁니다. 직접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마음과 생각은 그렇게 움직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게 어디가 얼마나 잘못된 모습인지를 거의 모릅니다. 세상은 이게 당연한 모습이어도 교회 안에서는 이러면 안됩니다. 목회자들도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움직여 가는 원리는 세상을 움직여 가는 원리와 같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에 대해서는 너희들은 나 하나로 만족하라고 하셨으면서도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을 향해서는 너희가 그들이 살 곳을 주고 구체적인 필요를 공급해 주라고 말씀하신, 어찌보면 서로 배치되는 말씀들의 의미를 잘 생각하고 그것을 각자가 스스로에게 잘 적용해야 합니다. 그 두 가지는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각자에게 주신 말씀들이지 실은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하나 레위인들이 다른 지파들의 땅에서 거주지를 얻게 되었던 것은 그들이 직접 요구해서 였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나와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주지를 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제가 이렇게 요구하는 것을 레위인들이나 목회자들의 권리라고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거듭 거듭 경험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이 이야기하기 힘든 주제여서 그것을 말하지 않고서 그냥 내버려 두면 그 주제는 결국 신앙과 교회를 망가지고 일그러지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돈이나 성에 대해서 무조건 입을 다물고 보자는 태도를 취할 때가 많은데요. 사실 돈과 성의 문제만큼 사람을 심각하게 망가뜨리는 중요한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중요한 문제가 그 누구도 이야기하기를 껄끄러워 하며 머뭇거리는 동안에 성도의 신앙과 교회를 가장 심하게 망가뜨리고 있는 그런 형국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껄끄러워 보이는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야기되어야 마땅한 것이라면 정당하고 분명하게 거론되어야 합니다. 계속 물 밑에만 넣어 놓고 이상하게 만들어 갈 것이 아니라 물 바깥으로 꺼내서 당당하게 이야기 하면서 바른 결론을 내리고 바른 원칙이 생겨나도록 해야 합니다. 목회자의 생활비 문제도 이런 주제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 문제 또한 무조건 금기시 할 일은 아닙니다. 이야기 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 하거나 세속적인 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 위로 꺼내놓고 각각의 교회가 자기 교회의 사정에 맞게 해결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교회와 신앙 안의 어두운 곳들에 빛이 비춰져서 세상이 주인이 되는 일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과 마음으로 대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껄끄러운 문제도 피하지 않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서로를 신뢰하며 밝고 순적한 태도로 모든 문제를 다를 수 있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어두운 구석이 줄어들고 밝은 곳이 점점 더 늘어나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광현교회 식구들이 다 이런 마음과 태도를 지닌 성도들이 되고, 우리 광현교회는 그런 곳이 되게 만들어 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참 자유와 풍성함, 그리고 섬김이 풍성한 신앙과 삶을 배워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