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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5.26.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사기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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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5월 26일 화요일




사사기 9장은 전체가 기드온의 아들이었던 아비멜렉이 자기 고향사람들의 지지를 힘입어 스스로 왕이 되었다가 자기 고향 사람들과 함께 망하게 되는 이야기가 쓰여져 있습니다. 사사기는 결국 누가 참된 지도자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라고 한다면, 이 아비멜렉 이야기는 순전히 자신의 탐욕으로 인해 다른 이들의 지도자가 되려는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욕망에 편승해서 힘을 지녀보려고 했던 어리석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가장 어리석은 비극이었습니다. 


기드온의 70명의 아들들 중에 한 명이었던 아비멜렉은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고향으로 갔지요. 고향에서 지지를 얻고 세를 모으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집이 세겜의 유력한 집안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편을 들어주자 아비멜렉은 손 쉽게 지역의 패권을 쥘 수 있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우선 세겜 사람들을 설득했는데요. 그는 70명이 너희를 다스리는 것과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나으냐고 말한 후에 결정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남보다는 내가 너희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낫고 내가 너희를 다스려야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했는지 모든 세겜 사람들이 그 말에 넘어가서 바알브릿의 신전에 들어가서 은 칠십 개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정치자금으로 넘겨 주었고 그는 그것으로 정치깡패를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비멜렉이 처음으로 행한 일은 바로 자신의 모든 배다른 형제들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깡패들과 함께 오브라로 가서는 자기 형제들을 모두 색출해 내어 하나의 바위 위에서 모두 죽였습니다. 요담만 겨우 숨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요.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민감하고 또 자기와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사람들을 더 좋아 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우기를 좋아하지요. 그래서, 선거 때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게 표를 던지는 일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것만큼 자기가 몸을 담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가 속해 있는 원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대해서 행할 수 있는 악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그 원안에 있는 사람들은 득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불의한 이익을 챙길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에게 그런 이익이 오려면 누군가는 나 대신에 손해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직접 그런 일을 행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간접적인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 특히 정치지도자를 선택할 때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익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더욱 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자신이 사는 세상을 물들이는 일이기 때문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더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 그림이란 바로 이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누가 내 이익에 부합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참으로 그리고 더 넓게 유익한 일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지도자를 선택하고 또 평가해야 합니다. 


아말렉은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패권을 차지합니다. 피의 숙청을 통해서 정적들을 다 제거하고 피의 보좌 위에 앉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지 3년만에 최측근인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에게 등을 돌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겜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돌이키셨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아비멜렉이 처음 약속한 것처럼 세겜 사람들을 특별하게 대해 주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자기 목적을 이루자 세겜 사람들을 나 몰라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세겜 사람들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어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아비멜렉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 일의 주동자는 에벳의 아들 가알이라는 사람이었죠. 이 일을 알게 된 아비멜렉은 자신을 왕위에 앉게 만들어 준 세겜 사람들도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세겜 성은 완전히 멸망을 당하는 수준까지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욕망이 있는 지도자는 결국 욕심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욕심을 채우는데 도움이 될 때, 그 때만 그런 사람들만을 유익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에게 사람이란 그저 그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 주지 못한다는 판단이 섰을 때는 가차 없이 버리고 내칩니다. 그 대상이 국가 전체든 국민들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게 뭐가 되었든 어차피 도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내 이익과 합치되고 또 나와 어떤 연관이 있고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그게 우리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그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이거든 절대로 그를 지지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지도력은 결국 자신이 지도력을 통해 섬겨야 할 대상을 이용하게 되어 있고, 함부로 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성을 허물어 버린 후에 내친 김에 데베스라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거기에도 세겜 성처럼 커다란 망대가 있었고, 데베스 사람들은 그 망대 위로 피했습니다. 그런데, 아비멕렉은 세겜 성에서도 그런 망대를 허물어서 망대 위로 피해서 저항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였던 전력이 있던 터라 이번에도 똑같이 하려고 자기를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그 망대를 공격하러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지 못한 변수가 끼어들어 결국 아비메렉은 그 자리에서 전사하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아비멜렉이 데베스의 망대 위에서 여인이 집어던진 멧돌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깨지는 치명상을 입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9장 마지막 절에서 성경은 이 일에 대해서 이렇게 논평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심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도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때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악을 행하는 것을 허용하십니다. 한 지도자가 권력을 폭력으로 사용하거나 혹은 그 지도자에게 부화뇌동하여 함께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가만히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뿌린 씨앗을 스스로 거둬 들이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대로 또다시 흘러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개인이나 교회, 혹은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사실 굉장한 낭비입니다.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며 비극의 주인공이 되게 하고, 또 하나님의 징벌의 대상이 되게 하는 그런 일들이지요. 아비멜렉의 일이 특히 더 비극인 이유는 이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그것도 기드온의 집안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당사자가 되건 동조자가 되건 욕망과 탐욕을 따라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나 자신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내가 스스로 욕심을 따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악한 누군가에, 그리고 악한 무언가에 기대서 나의 유익을 추구하려는 모습은 없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발견될 때마다 그것과 싸우십시오. 싸워 이기십시오. 그래서 이 세상 위에, 그리고 나의 인생 위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흔적이 더욱 더 뚜렷해 지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역할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내 욕심이나 입장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따라 움직일 줄 아는 거룩하고 가슴 넓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