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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5.29.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사기 14-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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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5월 29일 금요일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더라” 사사기 13장의 마지막절인 이 말씀은 드디어 삼손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나팔소리입니다. 삼손의 인생은 참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의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들은 그 하나 하나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행동인지 또 어디서부터는 그저 삼손이 자기 맘대로 방탕한 짓을 한 것인지 도무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14장만해도 그렇습니다. 13장 마지막 절이 그렇게 거창하게 화두를 던져 놓고서 그 다음에 이어가는 이야기는 삼손이 이방인인 블레셋 여인에게 반해서 무조건 그 여인에게 장가들게 해 달라고 아버지를 졸라대는 모습과 부정한 사자의 시체 속에 들어 있는 꿀을 떠다가 부모에게 주는 모습, 그리고 결국 결혼잔치 중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칠일동안 함께 잔치를 벌였던 블레셋 사람 30명을 때려 죽인 사건들이 줄지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인지, 또 어떤 일은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것인지 분별해 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4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이렇게 보면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삼손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일은 이 설명대로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혼내주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석연치 않은 점은 있습니다. 그러면 삼손은 그 여인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저 블레셋을 혼내주기 위해서 그저 그런 척 한 것에 불과한 것인가? 블레셋 여인이 수수께끼의 정답을 이야기해 달라고 조를 때, 알려주지 않다가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서 답을 알려준 것도 다 계획적인 것이었는가? 모든 것이 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부모에게 사자의 시체에서 나온 부정한 꿀을 먹게 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가? 삼손의 장인이 그의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주었던 것, 그래서 삼손이 화가 나서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혼내 준 것도 그런 것인가? 이 일이 일파만파로 커져서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고 그래서 잡혀 갔던 삼손이 라맛 레히에서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들 천 명을 죽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가? 무엇 하나 명확하게 그렇다 아니다를 이야기 하기가 참 어렵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일들의 어떤 부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지만 또 어떤 부분은 삼손이 방탕하고 즉흥적인 성격으로 행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실패하거나 좌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결국 삼손을 통해 블레셋을 무찌르고 블레셋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삼손의 이야기를 보면 삼손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사실 인간 쪽에서의 최선이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삼손의 경우와 원칙적으로는 비슷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나 아니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일치되게 순종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은 백번 말에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굉장히 가치있는 일이구요. 그렇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완전히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일치되는 방식으로 살고 일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어느 부분에선가는 우리 삶과 하나님의 뜻이 어긋나게 되어 있고 또 때로는 정말 어뚱한 부분에서 열심을 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방향을 잘못잡고서 헤맬 수가 있지요. 


그렇지만 그럴 때에도 우리는 절대로 섣불리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되는 순종을 보이기는 어렵고, 항상 자기 안에 있는 죄와 불완전함, 그리고 지혜와 지식의 부족함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는 잘못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시고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고 또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더라도 실패와 부족함은 항상 우리를 따라 다닙니다. 대개 이런 일들은 반복되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난 역시 안돼!’라는 생각과 ‘내가 이래서 무슨 하나님의 백성이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할까?’하는 실망섞인 질문이 저절로 고개를 들지요.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때 해야 할 것이 실망이나 좌절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부족함 때문에 실수했다면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항상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해 주고, 하나님의 능력은 항상 우리의 실수를 메꾸고도 남으니까요. 


우리가 죄를 짓고도 고치려 들지 않고 실수를 하고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기 힘으로 일을 이루려고 바둥거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완전하려고 하는, 아니 스스로 완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위해서 평생 구별된 나실인이었지만 그는 좌충우돌 갈팡질팡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지요. 삼손의 경우는 분명히 극단적인 예입니다. 항상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삼손의 이야기는 부족하고 연약해도 때로는 죄를 짓고 어긋나가도 여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며 무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의미있는 일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소망과 격려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삼손의 실패와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은 바로 하나님이셨으니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감당해 내려면 우리는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둘째 나의 역할은 항상 보조적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결과 때문에 지레 실망하고 포기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부족하고 연약해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을 가면 결국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때로 실수하고 죄를 지어도 끝까지 주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때, 그 일의 증인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