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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6.0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사시 17-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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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6월 2일 화요일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는대로 사사기는 엉망진창이 된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그 어느 구석 한 곳 제대로 된 곳이 없었습니다. 공동체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이방족속들의 괴롭힘은 극심했습니다. 영적으로는 그야 말로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은 물론이고 신이란 신은 다 끌어모아 가나안 땅을 신들의 백화점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젖과 꿀이 흘러야 할 풍성한 삶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돌보고 구원하기 위해서 세워진 사사들 중에서도 자기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자기 자신이나 자식들을 위해서 사사직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심지어는 사사가 나서서 우상숭배를 끌어들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름 없는 한 레위청년을 가운데 두고 벌어진 이스라엘의 신앙의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들의 이런 모습은 오늘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우선 레위청년은 레위인입니다. 레위인들은 나머지 열 한 지파들이 사는 성읍에 그들과 함께 살면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로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런 레위인이 원래 자신의 거주지로 정해져 있던 베들레헴을 떠나 유리방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은 베들레헴의 유다지파가 거기 레위인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지 않아서 생겨난 일이지만, 레위인은 그러면 안됩니다. 레위인은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거주지를 떠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분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레위인이 마치 조건이 더 좋은 직장을 물색하는 사람처럼 일자리를 찾아 여기 저기 기웃거립니다.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바로 미가입니다. 그리고는 미가의 제안을 받고서 미가 개인의 제사장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단 지파로 또다시 자리를 옮깁니다. 단 지파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으니까요. 이렇게 한 것도 큰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레위인 청년이 섬긴 것이 하나님이 아니었다는데 있습니다. 새긴 신상, 에봇, 드라빔, 부어 만든 신상 등. 온갖 잡스러운 것을 다 섬기는 마치 점치는 무당처럼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미가와 단 지파는 또 어떻습니까?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열심이 대단해 보입니다. 레위인 청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들의 열심 또한 완전히 방향이 빗나가 있었습니다. 우선 미가는 자기 가정에, 자기가 어머니에게서 훔쳤던 은으로 만든 신상들을 섬기는 신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레위인 청년을 자기 가정의 개인 제사장으로 고용했습니다. 중간에 보면 레위인 청년이 미가의 집에서 가정 제사장 역할을 하는 것을 기뻐했는데 그 이유가 그가 그 집안의 아들같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들처럼 만들어 버린 제사장, 그것도 자신이 개인적으로 돈을 주고 고용한 제사장, 그리고 그것을 기뻐했던 그 청년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단 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지파는 무력으로 미가의 신당에 있던 수많은 우상들을 강탈했고 그 레위청년까지도 협박하여 빼앗아 갑니다. 개인이 집단으로 바뀐 것일 뿐, 이들도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가와 단 지파가 레위인을 원했던 것은 그저 복을 받고 위안을 얻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섬기는 신이 누구든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신이 있고, 아니 많은 신들이 있고 그 신을 형식을 갖춰 섬겨줄 제사장이 있으면 됩니다. 게다가 그 청년은 레위인이었으니 금상첨화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면, 왜 그 때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17장 6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성경은 그 모든 일들의 이유를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합니다. 누군가 강력한 지도자가 없으니 사람들이 갈팡질팡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과연 정말 왕이 없어서 일이 그렇게 되었을까요? 왕이 없어서, 그들을 바르게 다스릴 왕이 없어서 레위인 청년은 자기 자기를 마음대로 이탈해서 온갖 잡스런 우상을 섬겨주는 제사장이 되어 돈에 따라 이리 저리 부화뇌동하였고, 미가는 레위인 청년을 우상들을 섬기는 가정의 제사장을 삼았으며, 미가와 단 지파는 그 우상들과 제사장을 차지하겠다고 서로 싸우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이제 왕정시대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보겠지만 왕이 있어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한 일도 일어났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했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 꼴이 되었다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단 한 순간도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비우신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백성이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때로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사사시대에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전이 왕이 있지만 왕이 없는 그런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가 이렇게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상태가 되면 그는 반드시 자기 자신이 왕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혀 성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를 정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그 이유가 다 이것입니다.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내용상으로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게 되고 그것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우리의 왕이 아니신 순간이 없습니다. 그 보좌를 단 한 순간도 비우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도 그런 하나님을 항상 우리의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이고 그 다스리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왕이 되어 우리 자신의 삶과 영혼을 망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망가뜨리는 일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란 아무리 탁월한 능력이 있더라도 불완전할 수 밖에 없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왕이 되면 인생이나 세상이나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되니까요. 


항상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이나 이 세상 그 누구나 그 무엇도 왕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우리의 인생을 다스리고, 이 세상을 온전히 다스릴 능력이 없습니다. 항상 우리의 참되고 온전한 왕이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서 가장 풍성하고 온전한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