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6.03. 새벽기도 - 성경읽기와 묵상(사사기 19장)



20150603D (#1).mp3.zip






설교일 : 2015년 6월 3일 수요일




설교자로서의 소명을 다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성경에 이런 이야기는 제발 좀 없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있고, 뿐만 아니라 그런 본문들도 설교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본문들 중에서 대표적인 본문인데요. 참 이런 말씀들은 정말 읽기도 힘들고 설교하기도 힘듭니다. 사실 요즘 영화를 보면 참 잔인하고 저런 일이 어찌 있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는 영화들이 많지만 오늘 본문과 같은 이야기들은 정말 그런 영화들보다도 훨씬 더 잔인하고 추잡합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언젠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있었던 실제사건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은 일이 현실 속에서, 그것도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났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또 레위인입니다. 레위인이 첩을 얻었고 그 첩이 바람을 피우다가 적반하장으로 스스로 자기 아버지 입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어제 이야기에 나온 미가 가정의 제사장이 되었던 레위인은 너무 가난해서 문제가 되었다면, 오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레위인은 첩을 둘 정도로 돈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문제는 돈이죠? 그래서 성도는 돈을 적절하게 다룰 줄 아는 영적인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많아도 그것 때문에 자신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특히 성직자라면, 목회자라면 더욱 더 그래야 했겠지요. 그런데, 사사시대도 그랬던 것처럼 참신앙이 점점 더 흐려져 가는 시대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이 성도들이든 성직자들이든 그런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문제는 그렇게 돈 문제에 이리 저리 휘둘리며, 시험에 들고 죄를 짓고 하는 일에 대해서 별로 심각한 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평신도든 목회자든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말로 너무 쉽게 합리화 해버립니다. 


아무튼 이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찾으러 처가에 갑니다. 장인이 붙잡는 통에 닷세나 허송세월을 하고 그 날 저녁에서야 장인의 집을 나설 수 있었고, 바로 이 일이 화근이 되어서 오늘 본문의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공인이 붙잡는다고 닷세나 허송세월을 하고 뻔히 가다가 해가 질 것을 알면서도 부득부득 저녁에 길을 떠납니다. 일관성도 없고 절제력도 없습니다. 결국 여부스에서 밤을 보내려고 하다가 그래도 이방인의 성에 들어갈 수 없다고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온에서 하루 밤을 보내기로 합니다. 누군가 영접하겠지 하고 기브온 성내의 넓은 거리에 앉았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이것이 당연한 것같아도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그네를 대접하는 정말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해서 천사를 영접했다는 이야기를 다들 알고 있어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을 천사를 대접하는 일처럼 생각했고 또 율법도 나그네 대접을 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브온의 넓은 거리에 앉아 있는 이 레위인을 맞아들이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분위기가 어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당시 그들이 신앙적이고 전통적인 미덕과 예의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 상태가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성도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떨어지면 모든 면에서 흐트러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합니다. 또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당연한 마음과 성품 그리고, 태도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어떤 노인의 영접으로 그 노인의 집에서 하루를 묶게 되지만 성내의 불량배들이 그 노인의 집까지 와서 그 레위인을 욕보이겠다고 하는 통에 노인은 차선책으로 자신의 미혼인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결국 그 레위인이 자기 첩을 억지로 문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잠가 버리게 되고 그래서 그 첩은 밤새 불량배들에게 윤간을 당한 후에 버려집니다. 참 이상하지요? 두 남자가 한 사람은 자기 딸을,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자기 첩을 내보내 그 불의하고 잔인한 일을 해결하고 자기들만 쏙 빠지려고 하다니 말입니다. 기본적인 양심이나 양식마저 저버린 비열하고 무정한 행동입니다. 이게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인간성이 망가지게 되면 보이게 되는 모습입니다. 남자로서의 자존심, 인간으로서의 양심,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당연한 의무... 이런 것들은 다 던져 버리고 그저 자기 자신의 안전과 편안함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나 개인이나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레위인의 마지막 행동은 정말로 우리로 하여금 글자 그대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레위인은 시체를 거두어 가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그 ‘짓’을 합니다. 마치 제사장이 제물의 각을 뜨듯이 자기 첩의 시체를 그렇게 해서는 각 지파에게로 보낸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한 복수에 협력할 것을 무시무시하고 잔인안 방법으로 요청한 것입니다. 그 기별을 받은 각 지파는 그야 말로 멘붕에 빠졌습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으니까요. 

오늘 말씀은 어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지만, 사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날 때, 그 사람이 어디까지 타락하고 잔인해 지고 무감각해 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본문은 그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거룩함과 온전함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동시에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거룩하게 지켜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못한 존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교회의 현실은 그것이 그저 이론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교회는 더 이상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세상에 내어놓지 못합니다. 성도는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떳떳하게 드러내기가 힘듭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되고 그래서 스스로를 욕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갑자기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저런 모습은 교회 바깥에도 없다, 저런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 말에 대해서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그것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너무 멀리 와 버렸으니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나를, 그리고 조국교회를 비춰 보아야 합니다. 종류는 달라도 너무 지나쳐 멀리 온 죄, 그러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죄와 우리 자신의 모습은 없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용서를 구하며 그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나는 아니니까 나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치부와 아픔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부끄러워 하고 함께 고쳐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은혜 안에서 하나님만 섬기는 자리를 떠나면 언제든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못한 자리로 떨어질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항상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내 속을 살피고 내 행동을 살펴서 우리 안에 악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서 항상 주님 앞에서 지킬 것은 지켜내는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