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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06.07. 주일오전 -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여호수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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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여호수아 8장 10-29절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여호수아서도 그렇지만,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약역사 속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의 나라로 세워져야 했는데, 그들이 나라를 세워야 할 땅은, 비록 그 곳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는 이미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터줏대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 이야기를 읽는 성도들 중에서는 이런 말씀들을 오늘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때, 엉뚱하게 적용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 이야기를 가져다가 그것을 직접 현실 속에서의 승리, 그러니까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르고 형통이라고 부르는 것과 직접 연결시켜서 적용하려고 합니다. 마치 그것이 우리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이나 직업적인 성공과 부유함의 비결인양 말이지요. 물론 때로는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배운 전쟁의 원리대로 했더니 하는 일도 잘 되고, 경쟁에서 이기고, 부도 얻는.... 그런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전쟁은 오늘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생존경쟁도 아니고, 또 종교전쟁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은 그 전쟁이 항상 무력과 무력이 충돌하는 진짜 전쟁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영적인 성격을 가지는 전쟁이었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은 하나의 나라인 동시에 그 전체가 그 당시로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교회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들과 싸우는 대적들은 모두가 다 이방의 신들을 열정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이들을 징벌하려고 하셨고,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전쟁은 항상 현실적인 전쟁인 동시에 영적인 전쟁인 그런 전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나라는 이스라엘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교회로 선택하신 경우는 이스라엘이 유일무이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교회는 온 세상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이제 어떤 특정한 ‘땅’이나 ‘지역’이 아니라 그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면 그 곳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실력 대 실력으로 맞서는 그런 의미에서의 전쟁은 이제 교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성도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생존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걸 우리가 얻어야 할 승리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이 세상과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뒤엉켜 이전투구를 벌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우리와 경쟁을 벌인 다른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들고 그들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경쟁이 만연해 있는 환경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때로 나에게는 기쁨이 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슬픔이 될 수도 있고, 나에게는 플러스가 되는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아얘 피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는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 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까요. 


오늘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싸움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 싸움이란 바로 눈에 보이는 싸움 뒤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승리란 바로 이 승리이고 우리가 눈에 보이는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이 전쟁에서 지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리고 성도로서는 결코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구약성경의 전쟁 이야기 속에서 현실 속의 경쟁을 이기는 방법을 찾아내기 보다는 우리에게 맡겨진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것을 우리 삶과 신앙에 적용해서 우리를 위한 승리의 비결로 삼아야 합니다. 


이제 드디어 아이성과의 두 번째 전투가 시작되고 있는데요. 이 두 번째 전투는 이미 살펴본 대로 한 번의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후에 이루어지는 전투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지는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였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이 전쟁을 위해서 특별한 교훈을 주셔야만 했습니다. 오늘은 이 전쟁을 하나님, 여호수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오늘 우리를 위한 말씀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전체 이야기 속에서의 하나님의 역할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면, 하나님은 아이성 공격을 명령하시고, 승리를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선 이것이 바로 교회의 역사와 성도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언제나 변함없이 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또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또 약속하시지요. 그리고, 시간을 두고 보면 그 약속을 분명히 지키십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믿고 그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이기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그것을 이행했을 때 무엇을 해 주겠다고 약속해도 우리의 선악과 악함 때문에도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그 약속을 어길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통제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무리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혹시 하나님도 그렇지 않으실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이유에서건 하나님의 명령과 함께 주신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법이 없으시니까요. 명령과 약속, 그리고 순종 뒤에 오는 그 약속의 성취. 이것은 하나님께는 절대로 깨지지 않는 철칙입니다. 그 원칙을 깨뜨리시면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실 수 없으십니다. 꼭 기억하시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명령, 약속, 순종, 그리고 성취. 이 원칙은 깨지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변경하시는 때는 더 좋은 것으로 이루시기 위해서이지 다른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조금 길게 보아야 하지만 말이지요. 


이제 여호수아의 경우를 살펴 볼까요? 여호수아는 첫번째 전투를 치렀던 때와 두번째 전투를 치를 때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요. 한 마디로 표현해서 여호수아는 이 과정에서 자기가 있어야 할 제 자리를 찾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정탐꾼들의 대략적인 보고만 듣고 그 보고를 두 번 생각해 보지도 않고서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저 되는 대로 3천명을 선발해서는 자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아무 때나 아이성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30000명을 그것도 용사들을 선발해서 그들을 밤에 보내면서 아주 조심시킵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매복병들이 매복을 끝낸 후의 여호수아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 첫번째 전투 때와는 아주 다르지요? 이전에 여호수아는 마치 전쟁은 자신과는 상관 없다는 듯이 행동했고, 자기 부하들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는 그저 자기가 있던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하들과 사병들 사이로 갑니다. 그리고, 공격 전날 밤을 그 곳에서 부하들과 함께 보냅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의 자신과 병사들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자신의 전쟁이라는 것도 바르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10절을 보면 그 다음날의 여호수아의 행동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지요? 그리고는 백성들을 점호합니다. 백성들에게도 적절한 전투준비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군사들을 먼저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장로들과 함께 자신이 앞장서서 아이로 올라갔습니다. 


여호수아는 앞장섰습니다. 그게 지도자의 참된 역할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고 그 자리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저는 물론 저도 그런 점에서는 많이 부족하지만 바로 이것이 스스로를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져야만 하는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라면 이 짐을 스스로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를 타이틀이나 자리 쯤으로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아니지요. 지도자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지도자는 본이 되어야 합니다. 말하고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같은 방향,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지도자는 더 그렇지요. 완벽할 수는 없어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마땅한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공동체에 덕이 되는 것이라면 내 마음과 상관 없이 기꺼이 그 짐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앞장 서서 올라갈 줄 아는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첫번째 전쟁에서 여호수아는 혼자 모든 것을 그것도 무심하게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는 그렇게 혼자 지도자의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불러 모았고, 함께 앞장서서 아이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전쟁이 자기 혼자 이끌고 혼자 공을 세우는 그런 전쟁이 되는 일을 막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에게 요구하신 전쟁이 되도록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해 졌을 때는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좋지 못한 변화는 무엇이든 혼자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협력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기만 믿고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요. 그리고 영광도 모두 혼자서 독식하려고 하기가 쉽습니다. 혼자 한 일이니 홀로 영광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자신의 크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겸손한 자리로 돌아오게 되면 그게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혼자 힘으로는 항상 부족할 뿐이며, 그래서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고 또 함께 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협력을 구합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영광을 혼자서 차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기꺼이 영광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세째,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공격명령을 내리실 때까지 아이성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인간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하나님께서 공격명령을 내리시기 전에 공격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그 때가 아니라 다른 때를 아이성을 공격할 최적의 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산 위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아이성에 대한 약속을 해 주시면서 “네 손에 있는 단창을 들어라”라고 하셨을 때, 손을 들어 공격명령을 내렸습니다. 스스로 총사령관 노릇을 하던 여호수아는 이제 이스라엘 군대의 수장이지만 스스로도 하나님의 부하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하나님의 수하가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신앙이란 때를 기다리는 싸움입니다. 급박하고 긴급할 때, 또 이제는 충분히 때가 되었다고 여겨질 때,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될 때, 그럴 때도 끝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의 싸움이고 또한 순전한 신앙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 인도에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마음대로 앞서나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오른쪽으로 가게 하려고 하시는데, 이미 먼저 왼쪽으로 저만치 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그래서 교회나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그 인도하심의 진짜 유익과 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 인도라는 것은요. 나중에 뒤처리 해 준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앞서 간다는 뜻입니다. 사후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전적인 개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정말로 바란다면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면 안됩니다. 그런 점에서 여호수아는 이제 철저히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마구 자기 마음대로 묻지도 않고 앞서 나갔던 여호수아는 이제 눈 앞에서 살고 죽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고, 그 명령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26절을 보면 여호수아는요. 처음 아이성을 공격하는 순간부터 그 아이성이 완전히 진멸되어 하나님께 바쳐지는 그 순간까지 단창을 든 손을 거두어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단창을 든 손으로 아이성을 가리키라고만 하셨는데, 여호수아는 그렇게 들어올린 단창을 아이성에 대한 진멸이 다 끝날 때까지 거두어 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인 동시에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명령을 따라 전쟁을 벌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선택이고 헌신이었습니다. 마치 그 옛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들어올린 손을 내리지 않았던 모세처럼 언덕 위에서 자신들이 싸우는 동안 단창을 내리지 않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겠습니까? 그들은 그것을 단순한 공격명령이 아니라 승리에 대한 확실한 보증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여호수아의 모습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하나님 앞에서도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공격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승리에 대한 약속도 주셨지요.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 약속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과 믿음 때문에 게을리지거나 무책임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약속이 없는 상태에서 전쟁을 치르는 경우보다도 더 예민하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확실하게 순종하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는 마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간혹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오해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니 나는 할 일이 없고, 또 아무 일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분들을 종종 보았는데요, 입만 열면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을 이야기 하지만 삶을 보면 게으르고 무책임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에 대한 큰 오해에서 생겨난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을 주십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약속을 주실 때도 있구요. 성경을 통해 일반적인 약속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고 또 이루어 주 시지요.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게 약속이 주어지는 시점과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점 사이에는 항상 시간적인 갭이 있다는 것입니다. 약속에는 약속을 이루시는 과정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대개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 하나의 선택이나 행동들을 그 약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 선택과 행동들 속에는 하나님이 명확하게 명령하시고 요구하시는 것들에 대한 순종도 포함되지만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이 스스로 헤아려 선택한 것들과 행동들도 포함됩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의 삶과 행동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굉장히 조심스럽고 예민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내 삶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선한 도구가 되게 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구요. 이렇게 애쓰면서 사는 삶은 분명히 어차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또 그 약속을 이루어 갈텐데 하고 무감각하고 덤덤한 살아가는 삶보다는 현실적으로 볼 때,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아야 이게 하나님을 믿는 거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성도의 삶은 마치 바람을 타고서 항해하는 요트처럼 하나님의 언약 위를 미끄러지듯이 항해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정말 기가 막히게 인도하시고 움직여 가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이 전쟁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전쟁은 이미 승리가 약속되어 있는 전쟁입니다. 지난 번 처럼 크게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지만 않으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지요. 그렇다면 이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정상일까요?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장한 전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지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적같은 개입으로 승리를 얻어냈지요. 모세 때에도 그랬고, 여리고성 전투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성 전투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이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이 될테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이성에서는 그렇게 싸우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이 전쟁에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손에 든 단창을 아이성을 향해서 가리킨 그 행동을 제외하면 이 전쟁은 여느 전쟁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이 전쟁은 30000명대 12000명의 전쟁입니다. 물론 30000명은 성을 빼앗으려고 하고 12000명은 그 성을 지키려고 하고 있고, 항상 공격하는 사람들보다는 수비하는 사람들이 더 유리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조건으로만 보면 이 전쟁은 이기는 전쟁입니다. 또 이 전쟁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행한 작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그 작전이 아주 특별합니까? 사상 초유의 사람은 전혀 생각해 낼 수 없는 너무나 독특하고 특별한 작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작전은 어떤 나라가 다른 성을 공격해서 차지하려고 할 때는 한 번쯤 사용하는 너무나 평범한 작전입니다. 군대를 매복시켜 놓고 성 안의 적들을 유인해 내서 성을 차지하는 아주 평범하고 흔한 작전이지요. 만약 3절부터 17절까지의 이야기를 따로 떼어 놓고 살짝 주어와 지명만 바꿔서 다른 전쟁이야기 속에 끼워 넣으면 전혀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평범한 전쟁이야기가 될 정도로 이 전쟁이야기는 너무나 흔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이 전쟁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주 독특한 전쟁이 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과 작전, 그리고 승리의 약속 아래에서 치뤄지는 전쟁이지만, 막상 전쟁 자체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다른 전쟁과 전혀 다름 없는 방법으로 이루어진 그런 전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이 속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도로 사는 것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가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아주 독특한 모양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라고 해서 이슬만 먹고 사는 것 아니고, 24시간 기도만 하면서 사는 것 아니며, 화 한 번 내지 않고, 어려움 한 번 겪지 않고, 세상에 망해도 무심하게 바라만 보면서 그렇게 구름 위의 신선처럼 사는 게 아니지요. 우리도 학교에 가고 회사에 다닙니다. 돈을 벌어 가족들 먹여 살리구요. 애들 잘 교육시키려고 애를 쓰며 삽니다. 때로는 티격태격 부부싸움도 하구요. 엄마와 애들은 매일 매일 집안을 전쟁터로 만들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살아가는 겉모습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이렇게 똑같은 삶을 다르게 살아내는데 있습니다. 사실 아이성에서의 승리는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정도의 전쟁에 대한 기록들은 어떤 나라의 전쟁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전쟁의 승리에는 이 승리를 특별한 승리로 만드는 특별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이 승리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역사하셔서 얻은 승리가 아니라,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충분히 이길 수 있고 또 이기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싸워서 얻은 그런 승리였으니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전쟁에서 눈에 보이는 전쟁이 아닌 보이지 않는 전쟁, 그러니까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이 승리가 그렇게 특별하고 값진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싸워야 할 전쟁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전쟁이 바로 우리가 치러내야 하고 또 승리해야 할 전쟁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 싸움을 명령하시고, 승리를 약속하시며, 또한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싸우기만 하면 됩니다. 때로 문득 문득 지는 것 같아도 우리가 그 싸움을 그만 두지 않는 한 우리는 항상 이기는 편에 서게 됩니다. 결국 이 전쟁은 하나님이 마지막 승리를 거두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비록 그 전쟁의 승리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우리가 그 승리의 약속을 믿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약속과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영광스러운 작은 승리를 맛보며 이기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싸움을 싸워야 하는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이 싸움이 뭔가 특별하고 신비한 그런 싸움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는, 정말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흘러갈 것 같은 그런 삶의 상황 속에서도 예민하게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그 뜻에 순종하는 믿음의 싸움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싸움입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삶을 믿음으로 특별하게 살아내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신 대부분의 싸움이 가지는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삶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지 마십시오. 승리는 이미 약속되어 있고, 우리가 그런 삶에 헌신한다면 그 약속된 승리는 우리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 범위 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항상 특별하기 보다는 평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지요. 그 평범한 삶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소중한 한 조각이 되게 하려고, 그렇게 우리의 삶을 특별하게 하시려고 말이지요. 평범함을 탓하지 마시고 그 평범함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특별한 삶을 살며, 그 안에서 주시는 크고 작은 승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