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6.19.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무엘상 15-16장)

 


20150619D (#1).mp3.zip





     설교일 : 2015년 6월 19일 금요일



     사무엘상 15장과 16장은 사무엘상에서 전환점이 되는 곳입니다. 여기서 사울은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그 다음 왕인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사울이 그렇게 망가져 버렸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이지요. 사람이란 언제든지 이렇게 될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특히 가진 것이 없고 내세울 것이 없을 때는 그렇지 않지만 가진 것이 많아지고 내세울 것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렇게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런 점에서는 열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도 항상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고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또 지도자로서 머물러 있어야 할 자리를 자꾸 이탈했지만 그래도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또 번성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런 사울을 완전히 버리시고 떠나시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공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헤렘, 그러니까 진멸을 명하셨습니다. 그 악이 너무 깊고 커서 그런 식으로 밖에 다른 방식으로는 다룰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울과 백성들이 그 일을 처리한 것에 대해서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진멸되는 것은 원래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찮은 것은 다 멸하고 귀하고 값어치 있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것은 가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가치있는 것은 자기들이 가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멸시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비록 하나님께서 그 말씀 그대로 하신 적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헤렘을 명하신 것을 헤렘이 되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헤렘이 되도록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울과 백성들은 그 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그렇게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에게 이 일에 대해서 끝까지 거짓말을 합니다. 그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려고 그렇게 했다고 말이지요. 그럴 듯한 핑계이지만 이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아말렉 성에 있는 것들은 헤렘이 될 때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헤렘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도 좋은 것을 남겨서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니 이보다 더 궁색한 변명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욕심에 빠지고 죄에 빠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욕심에 빠지고 죄에 빠지면 뻔한 거짓말을 합니다.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데 계속 그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소용 없는 일이 하나님을 속이려 드는 것이지만 그 일도 서슴치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말을 합니다. 


    이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완전히 버리셨다는 사실을 통보한 후에 사울을 떠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울은 사무엘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의 뜻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장로들과 지도자들 앞에서라도 자신의 체면을 살려달라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마지막 자비를 베풉니다. 사울과 함께 동행해 주어서 아무튼 전쟁에서 승리한 사울의 자존심을 높여줍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는데, 자존심이나 체면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으면 이제 사람 밖에 남지 않으니 그 사람 앞에서 스스로 높여지고 또 체면을 세우는 일은 그에게는 목숨처럼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사무엘은 라마로 돌아갔습니다. 사울은 기브아로 갔습니다. 그 날 이후로 사무엘은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사울 때문에 너무 슬펐기 때문입니다. 몇 날 며칠을 그 일로 슬퍼하는 사무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사무엘을 나무라고는 그에게 다시 왕을 세우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사람의 아들 중에서 내가 왕으로 보아둔 사람이 있으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선택하신 사람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확신은 엘리압의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키도 크고 잘 생겼으니까 왕으로 손색이 없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 엘리압처럼 키크고 잘 생긴 사울을 버렸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외모는 정말 극복하기 위한 편견입니다. 어떤 일을 하려면 키는 이 정도, 생긴 것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외모가 좋으면 그 사람의 가치까지 높게 판단하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외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향해 중심이 맞춰져 있느냐를 보십니다.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 바깥에 덧붙여지는 겉모습에 속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나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지 그것을 언제나 잘 살펴야 하며, 그렇게 우리 중심이 하나님께 맞춰져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그 집안의 천덕꾸러기, 들에서 항상 양이나 치던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차기 왕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사울은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을 받습니다. 그래도 그 동안 사울과 함께 하시면서 사울을 도와주셨던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나갔고, 그 대신 악령이 그를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사울은 요즘으로 말하면 극심한 우울증과 히스테리, 그리고 강박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떠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이 완전히 떠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남는 일이라는 것은 악령에 휘둘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사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해야 하며,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삶과 하나님이 떠나신 삶은 차이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 차이가 16장 마지막에 나오는데요. 그렇게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고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은 불안과 우울함으로 견딜 수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 기름부음받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 시작한 다윗은 그런 사울을 치료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악령을 쫓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함께 해 주심과 지켜주심 속에서 살아가려면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들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중심을 하나님 앞에서 잘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는 사울이 비록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지만 결국 그 길로 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으로 어떠한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떠한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자기 중심을 지키고 있고 또 지켜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손쉽게 자기 자신을 바꿔 버리는 이 시대에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중심을 변함 없이 지켜내기 위해서 애쓰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해 주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오히려 그 능력으로 사람들을 돕고 치유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