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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6.2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무엘상 18-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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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 2015년 6월 23일 화요일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구한 다윗은 그야 말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국가를 구한 영웅이니 당연히 그럴만도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 군대가 돌아오기 전 기브아에는 이미 다윗에 대한 소식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사들을 환영하기 위해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마도 이미 환영행사가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은데요. 군대가 행진해 가는데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합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 노래는 그저 이스라엘이 이긴 것이 기뻐서 만들어 부른 노래이지만 노래를 지은 사람이 그다지 사려 깊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왕을 위해서건 아니면 공을 세운 다윗을 위해서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왕인데 개선해 오는 행렬을 환영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왕보다 다윗을 더 높이다니 말입니다. 결국 이 일 노래 때문에 사울은 대노하게 되고 또 다윗을 심각하게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 날 큰 일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사울이 악령에 사로잡혀서 정신착란증상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은 그저 악령이 홀로 만들어 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여러번 그랬지만 전날 사울은 이미 자기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 좋은 날 질투심과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화를 내면서 나라를 구한 다윗을 강하게 견재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 마음에 악령이 틈타서 그를 그런 상태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 마음을 지키려 들지 않으면 그 마음은 그 누구도 대신 지켜줄 수 없습니다. 악령이 역사하고 마음대로 휘두르기 쉬운 마음상태를 만들어 놓으면 악령은 반드시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평소대로 자기의 병세를 달래주기 위해서 수금을 타는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집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입니다. 물론 다윗은 날아오는 창들을 피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사울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잃고 질투와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서슴치 않는 광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윗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렇게 공을 세운 후에 다윗은 자신이 맡는 일마다 너무나 잘 처리해 나갔고 또 그래서 백성들의 더 큰 사랑을 입게 됩니다. 물론 그럴 수록 사울은 다윗을 더욱 더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사위자리를 제안하면서 그것을 이용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실 상황을 보면 처음에 다윗은 그 자리를 거절했지만 나중에는 굉장히 원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위험천만한 적진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도 사람은 사람이지요. 자꾸 지위가 올라가고 지명도가 높아지니까 왕의 사위가 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고, 그래서 별 이유도 없이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들었습니다. 결국 사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둘째 딸 미갈을 아내로 맞이하고 왕의 사위가 되는 영예를 얻게 되지만 그것 때문에 다윗을 향한 사울의 미움과 질투, 그리고 견재는 더욱 더 커져만 갔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이미 다윗과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였고 또한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아버지를 간곡하게 설득합니다. 사울은 요나단의 이야기를 듣고 일시적으로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쳤지만 그런 생각을 아얘 떨쳐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이미 그를 떠났고, 그런 분노와 질투, 그리고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울은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시 자신을 위해서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을 향해 창을 던졌고, 미갈에게로 피신한 다윗에게 부하들을 보내서 또 죽이려고 들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사울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완전히 노골적으로 다윗을 죽이려 들게 됩니다. 


사람들의 모든 문제는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부터 나옵니다. 사람들은 문제의 근원이 환경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환경은 단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자극해서 바깥으로 끄집어 내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상황이나 환경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항상 한계가 있고 완전히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꾸 그런 문제들을 반복해서 일으키는 마음만 고쳐 먹으면,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면 그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럴 것 같지만, 그런 시도도 완전히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자기 마음을 온전하게 다루어 낼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마음의 문제도 없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환경이 나빠지고 그 뿌리가 다시 건드려 지게 되면 예전의 문제가 또 다시 고개를 들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도 불행해지고, 또 다른 사람들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 당사자가 사울처럼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불행해 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집니다. 


    저는 성도들 중에서도 마음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아서 계속해서 똑같은 어려움에 빠지는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은 아무리 고치고 또 고쳐도 완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고쳐지면 완전해지지는 않아도 그 사람도 그렇고 그 사람의 주변도 그렇고, 그 사람의 마음의 문제 때문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또 반복해서 겪는 일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분명히 그 마음의 문제가 어떻든 적어도 그 정도까지는 해결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런 문제들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내놓아야 합니다.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 망가진 마음을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달라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성경의 사고방식으로, 세상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고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렇게 해결된 마음의 문제는 이제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현실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기 시작합니다. 


    천하를 얻은 사울이었지만 그는 자기 마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고 또 해결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도 다른 이들의 삶도 전부 망가뜨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신앙 안에는 우리 내면의 문제를 다루어낼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해결을 위한 충분한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속 사람의 문제를 다루어 내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로 인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유익을 얻는 그런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