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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6.26.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무엘상 24-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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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 2015년 6월 26일 금요일




    세상에는 참 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악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에게 붙어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사울이 분명히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거의 병적으로 아무 잘못도 없는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다윗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는 것은 절대로 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울을 위하는 일도 아니고, 오히려 사울을 악행으로 몰아넣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출세의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도엑입니다. 이 사람은 다윗이 놉의 제사장에게 갔을 때, 거기 있었던 사람이었는데요. 이 사람이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베푼 친절에 대해서 보고하는 바람에 80명 훨씬 넘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일시에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어마 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 것입니다. 두번째 사람은 이름이 성경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에서 돌아왔을 때,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정보를 준 사람입니다. 결국 이 사람 때문에 다윗은 그야 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할 뻔했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만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움직이기가 참 쉽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입장과 자기 이익이 최고의 목적이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것들은 그것을 위한 도구로 보기가 쉽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저질러 지는 악한 일들은 어느 정도는 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피해와 상처는 다른 사람들과 세상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게 되지요. 성도가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가 자기 중심성을 그대로 놓아두면 성도라고 해서 별다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중심성을 내버려 두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사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우리 주님을 닮은 삶을 살아갈 수가 없고, 나아가서 섬기고 돌보라 주신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커다란 아픔과 상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르게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그런 삶을 살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자기 중심성을 다루어 나가는 과정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 다음, 24장에 나오는 나발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 또한 자기 중심적인 사람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참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부자였습니다. 이 사람의 자기 중심성은 아주 유치한 교만함으로 나타나났는데요. 이 사람은 한 해 동안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자기 재산을 지켜주었던 다윗에게 정당한 사례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망친 노예취급하면서 심하게 모독합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없는 사람을 멸시한 것이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항상 아주 유치한 교만함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자신을 높이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을 낮출 이유를 찾아 다닙니다. 그러다가 그렇게 해 주는 꺼리를 찾게 되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해서 자신을 높이고 다른 이들을 낮춥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언제나 크게 낭패 볼 이유를 안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항상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발은 자기 재산만 보았습니다. 그 재산을 근거로 자신은 높이고 다윗과 그 일행을 심각하게 욕보였습니다. 그러나, 나발에게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힘을 가진 다윗에게 목숨을 잃을 뻔 하는 위기를 만났던 것입니다. 힘 면에서는 다윗이 훨씬 우위였으니까요. 그가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와 닿기도 하는데요. 사실 그것이 바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빠지기 쉬운 교만의 뒷모습입니다. 교만은 내가 남보다 뭐가 낫다고 생각할 때, 그것 때문에 나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낮추려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때는 그 사람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며 또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또 깊은 낙심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모습이 다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욱해서 나발과 그 가족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고, 그것은 다윗 자신도 인정했다시피 그의 명백한 실수였으니까요. 아마 아비가일이 막지 않고, 또 하나님께서 막아서지 않으셨다면 다윗은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을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래도 다윗은 비교적 제 자리를 잘 지켰습니다. 특히 그가 자기를 죽이려고 추격해 온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얻었으면서도 오히려 그를 살려 주었고, 순간적으로나마 자신이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사람을 죽이려고 했음을 뉘우치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의 진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에 나발에게 복수를 하려고 달려가는 자기 앞에 아비가일이 나타나 지혜로운 충고로 참극을 막았을 때, 그가 자기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서는 모습은 그래도 다윗의 다른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잠시 감정에 휩쓸릴 수도 있고, 상황 때문에 악을 행하려는 마음을 먹으려고 할 수도 있고, 때로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인 사람은 그런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살려 보내고 감동시킬 정도의 관대함을 보일 수도 있고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정직함도 보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중심인 사람들은 무엇이 있고 없음에 따라 자기 태도나 행동을 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지를 중심에 놓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무엇이 있고 없음이 자신의 높음이나 낮음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이 세상에 이런 저런 아픈 상처와 악한 흔적들을 남기게 되구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고, 또 내 이익, 그리고 무엇이 있고 없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유치하게 만들고 세상과 교회를 망가뜨리는 자기 중심성을 넘어서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자시 중심성이 만들어낸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아름다운 삶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서십시다. 그리고 나 중심,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십시다. 하나님과 나에게는 영광이 되며, 이웃에게는 유익이 되는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