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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7.08.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무엘하 9-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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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 2015년 7월 8일 수요일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왕조가 바뀌게 되면 가장 불쌍해 지는 사람들이 바로 직전 왕의 자녀나 손자들인데, 그 중에서도 어린 아이들은 가장 불쌍한 처지가 됩니다. 어른들이야 권력의 맛을 보았거나 또 그 권력판에서 나쁜 짓도 저질렀을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그저 왕가에서 태어난 죄 밖에 없지만, 결국 샅샅이 찾아 내어져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항상 왕조가 바뀌면 이전 왕조의 흔적을 지우는 동시에 나중에 커다란 불로 번질 수 있는 불씨들은 다 꺼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왕가에도 그런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이라고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위험을 직감한 유모가 피신시키다가 다리에 장애를 입게 된 그 당시 5살짜리 아이였습니다. 이제 세월이 한참 지나서 이 므비보셋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인 마길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몰락한 왕조의 마지막 후손인지라 그렇게 잊혀져 살아가는 것이 가장 다행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국을 다시 세우고 정비하는 일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자 조금 여유가 생긴 다윗은 그제서야 자기가 요나단과 했던 약속이 기억났습니다. 다윗은 분명히 요나단과  자신이 왕이 되면 요나단과 그의 가족들을 보호하고 책임져 주겠다는 언약을 맺었습니다. 바로 그 언약이 기억이 났던 것입니다. 거의 20년이 지난 후에야 그 약속을 기억해 낸 다윗은 서둘러서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보니 사울의 집에서 일했던 시바라는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불러들였고 자기의 의도를 밝히면서 혹시 사울의 식구들 중 살아남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시바는 므비보셋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다윗은 곧바로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게 했습니다. 


    이 일은 사실 므비보셋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숙청대상 일순위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다윗의 인물 됨됨이를 알았겠지만 그래도 자신과 아들이 사울왕조의 마지막 생존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확신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켜 가며 다윗 왕 앞에 선 므비보셋에게 다윗은 자신이 요나단과 맺은 언약대로 그대로 행합니다. 원래 사울의 소유였던 모든 땅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고 그를 자기 아들처럼 대해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항상 다윗과 함께 식사할 수 있게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비록 몰락한 왕조의 후손이었지만 그의 명예를 그렇게 회복시켜 주고, 그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죽이지 않더라도 항상 감시자를 붙여서 예의주시하게 하는 것이 상식이지요. 그런데 다윗은 므비보셋을 그렇게 대해주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했던 첫번째 이유는 그 자신이 이미 말한 것처럼 아버지 요나단과의 약속 때문이이었습니다. 다윗은 끝까지 그 언약을 배반하지 않고 지켜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흉내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덕분에 사는 사람으로써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신실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위험하더라도 또 손해를 보고 오해를 받더라도 말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이러한 행동은 두번째로 그의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삶, 그리고 한 나라의 흥망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가져가시고 또 왕좌를 옮기시기로 하시면 그것을 막을 수가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확신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선택을 하고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할 일이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책임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은 자신이 결정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너그럽고 담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정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요나단과의 언약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의 그런 믿음이 그의 마음 속에서 불안함과 두려움을 몰아내 주었고 그래서 그는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그것도 충실하고 충분히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사는 모습을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나질 않습니다. 정직하지 못하고 담대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럽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여전히 이런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가 없는 껍데기만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일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과 그 안의 모든 일들은 전부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섭리하십니다. 이 진리를 믿으시지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려는 일 중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없고 또 허락하지 않으시는 일 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 삶을 하나님의 뜻과 성품에 일치되게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속에 가장 안전하게 머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바에게 사울의 가족 중에서 생존자가 없느냐고 물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다윗은 그렇게 커다란 친절과 은혜를 베풀면서 그것이 자신의 호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이 모두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때, 그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진실로 깨달은 사람들은 내 것, 내 것 하지 않습니다. 내 것이니 나 맘대로 하는 것이 나의 권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만큼 다른 이들을 향해서 너그러워 지고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면 막을 자가 없고, 반대로 가져가려고 하실 때도 그렇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로 이 세상과 나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확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른 너그럽고 정직하며 신실한 삶, 그렇게 우리 하나님의 성품이 녹아들어가 있는  삶을 사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확신하는 가운데 살아서 고상하고 용기있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