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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07.19. 주일오전 -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여호수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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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여호수아 11장 1-9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여호수아서의 바로 앞에 성경책은 신명기인데요. 신명기 11장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언약을 새롭게 하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주신 약속입니다. 정말 믿겨지지 않을만큼 복되고 좋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복된 약속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하신 조건은 딱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너희에게 주는 율법만 지키면서 살면 내가 너희를 강성하게 해 주어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해 줄 것이며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땅에서도 풍요롭고 평안한 삶을 살게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꺼이 이 조건을 받아들여 하나님과 다시 언약을 맺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로 했는데요. 그래서 이렇게 신명기가 끝나고 그 뒤에 이어지는 여호수아서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진짜로 어떻게 지키셨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승리의 기록들 뿐만 아니라 패배의 기록들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아이성 전투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아이성에서의 패배는 이스라엘의 약한 군사력이 아니라 불순종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할 때는 약속하신 승리를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았을 때는 약속하신 패배를 주셨습니다. 어떤 경우에건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신실하게 행하셨습니다. 


     여호수아서는 10장까지 오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남쪽 지역에 대한 정복을 거의 끝냈다고 말해 줍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이 절반은 성취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했기 때문에 얻은 복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실패했습니다. 좋은 물건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리고 승리로 잔뜩 부풀려진 교만함 때문에 두번씩이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중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단 한 번의 불순종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그것만 생각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되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가 있고 허물이 많은 불완전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를 바라시면서도, 죄를 짓고 불순종한 우리가 우리의 죄로부터 돌이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면 다시 우리를 받아 주시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실패와 패배가 계속되게 하지 않으시고 다시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남쪽 지역을 모두 차지했으니 이제 북쪽 지역을 차지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북쪽에 사는 가나안 족속들은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남쪽의 기라성 같은 성읍들이 모두 쓰러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나안 북쪽 지역에서 가장 큰 세를 과시하던 하솔왕 야빈은 사람을 보내서 그 지역의 크고 작은 성읍들을 모두 규합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격을 받기 전에 먼저 선전포고를 합니다. 가나안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메롬물가에 진을 치고서 이스라엘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이스라엘에게는 엄청난 위기였습니다. 이 전쟁은 그 동안 이스라엘이 치렀던 전쟁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전쟁이었고, 적들은 숫자만 많았을 뿐 아니라, 오늘로 표현하면 소총 밖에 없는 이스라엘 병사들 앞에 탱크며 장갑차 같은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 번 영적인 싸움에서 이긴다고 해서 사탄이 순순히 우리 앞길을 터 주는 법은 없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의 승리가 자기들의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에, 또 그렇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들이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시작하면 사탄은 우리 삶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잃게 됩니다. 이전에는 쉽게 자기 말을 들었던 사람이 갑자기 뻣뻣해 지니 사탄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고, 그래서 자기의 힘과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사용해서 우리 앞을 가로 막아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다가 그런 일을 만나면 오히려 하나님께 실망하고서 다시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다가 만나는 어려움은 넘어서야 할 시험이고 난관이지 절대로 우리를 물러서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 앞에 두시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장애물 달리기에서 장애물을 무서워하면 그 경기를 계속할 수 없듯이 믿음의 경주도 눈 앞에 있는 장애물을 두려워 하면 결코 그 경주를 계속할 수 없고, 그 경주에서 승리하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해 집니다. 


    그렇게 메롬 물가에 진치고 있는 가나안 북쪽의 연합군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은 또다시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자기들이 아니라 상대방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처럼 그 세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엄청난 반대나 난관에 부딛히면 얼마나 낙심하기 쉽고 또 두려움에 빠지기 쉬운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다고 해서 “그래, 그래 내가 잘 안다. 네가 두려워 하는 게 당연하지, 그 낙심 내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니까 사람이지 그러지 않으면 사람이겠니? 많이 힘들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두려워 하지 말아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올 때, 마음의 위로와 격려를 얻으려고 옵니다. 물론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우리들에게는 위로도 필요하고 격려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위로와 격려만으로는 절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위로와 격려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다람쥐가 채바퀴 도는 듯한 모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런 분들을 정말 수없이 보아 왔습니다. 주일 날이면 그 얼굴이 환해 집니다. 바라던 위로를 얻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얼굴의 빛이 일주일을 못 갑니다. 며칠 후에 만나면 그 얼굴이 또 어두워져 있고, 근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지요. 그러면서 신앙이 성숙해 지느냐 하면 거의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삶에 익숙해 져서 그냥 계속 그 일을 반복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들을 위로해 주시고,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만드셨으니 하나님이 제일 우리 마음을 제대로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위로가 위로에서 끝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격려가 그저 격려만 되는 데서 끝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그저 상처받기 쉽고 그저 낙심하기 쉬운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면 그저 좋아하며 다시 똑같은 삶으로 되돌아 가니까요. 


    여호수아에게 ‘그저 두려워하지 말라’고만 말씀하신 하나님은 곧 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그래도 약간은 두려워하고 낙심해 있었던 여호수아에게 다른 말 하지 않으시고 그저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그 다음 날 그 모든 군대를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해 줄 때, 그것은 명령이 아닙니다. 표현은 명령같아도 그 속 뜻은 그저 “나는 네가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정도 밖에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어떤 사람이 두려워 하는 문제를 완전히 책임질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까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실 때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한 명령입니다. 명령에 따르려면 의지가 꼭 필요한데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네가 정말로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기로 결단한다면 정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그저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우리의 두려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두려워 하지 말자, 두려워하지 말자 수없이 되뇌이고 또 되뇌었지만 어떻습니까? 그 때 분입니다. 고개만 돌리면 마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움츠러듭니다. 그 일에 대한 걱정과 근심 때문에 밤새 심장은 쿵쾅거리고 뒤척거리며 밤을 보냅니다.  최악의 경우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면서 밤새도록 장편 소설을 하나를 쓰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의지만으로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만한 충분한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일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분명히 맨 처음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내일 이맘 때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초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이 두 말씀 중에서 어디에 집중하기를 바라셨을까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을까요? 아니면 ‘내가 내일 이 맘때 그들을, 네가 두려워하는 그들을 너희들 손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겠다’는 말씀이었을까요? 뒤쪽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쪽에 나오는 주님의 약속에 집중하고 거기에 믿음의 촛점을 맞추기를 바라시면서 이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이란 두려움 자체를 없애려고 하면 절대로 없앨 수 없지만, 우리의 두려움을 만들어 내는 이유를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집중하면 당연히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저도 정말 정말 오랫동안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복된 약속에는 항상 그 약속이 진짜로 나의 삶의 경험이 되게 해주는 조건이 따라 붙는데, 그것을 모르고 자꾸 그 복에만 집중했습니다. 누구나 잘 아는 너무 유명하고 복된 말씀, 그렇지만 또 그만큼 우리 자신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그런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마태복음 6장 25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인데요. 거기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요약하면 먹고 사는 문제나 건강의 문제, 이런 것들 때문에 염려하고 두려워하면서 살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야속하시지 누가 그러고 싶어서 그럽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이 현실을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투덜거리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는 이 말씀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 그러면 좋겠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되나? 어떻게 사람이 생활에 대한 염려 없이 살 수 있어. 걱정은 당연한 건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없으시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 말씀 자체,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걱정을 없애는 일에 번번히 실패하고 결국 말씀따로 나 따로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진짜로 반응하기를 바라시는 말씀은 31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하늘에 나는 새들과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백합을 통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염려하지 말아야 하고 또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해 주욱 우리를 설득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삶의 조건들과 필요들을 바라보면서 살면 너희는 절대로 평안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계속 염려와 불안에 붙들려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너희가 하나님을 너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또 채워주시는 너희 아버지로 정말로 믿는다면,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너희는 근심과 걱정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 너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너희 삶에 더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집중하고 붙들기를 바라셨던 말씀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공급해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집중하고 그 사실을 믿으며 살아서, 그것이 어떻게 믿는 자들의 현실에 대한 해답이 되는지를 경험하며 살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깨닫고 나서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깨닫는 순간에는 아직 약속하신 그 복이 제 것이 되지는 않았지만 제가 제 인생에 대한 해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해답을 얻었다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부터 염려와 근심과 싸우는 대신에 제 안에 있는 불신앙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더 나은 믿음, 정말 하나님을 나의 모든 필요를 헤아리시고 완벽하게 더해 주시는 나의 전능하신 아버지로 믿는 믿음을 가지기 위한 싸움에 돌입했습니다. 그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요. 항상 그 믿음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제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제 안에 그 믿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제 삶은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저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제 주변의 모든 일들과 사건도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래서 저는 이제 그 일이 무엇이든 과도하게 미리 염려하고 근심하는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더욱 더 하나님만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활과 삶의 문제를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하고 나니 저는 요즘 저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아얘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미래 때문에 걱정하는 일 자체에 너무 화가 납니다.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붙들려서,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과 시간을 낭비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귀한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속이 상합니다. 그 자유와 풍성함, 그리고 평안을 포기하고 근심과 염려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제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내일 이맘 때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하던 여호수아는 주님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기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에 집중했고,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더 놀라운 일도 많이 해 주신 분이시니 그 약속도 믿었던 것이지요. 그랬더니 눈 앞에 있는 그 어마 어마한 적들이 더 이상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에 기꺼이 그리고 너무 쉽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지요? 그 증거는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해 주신 후에, 여호수아는 북쪽 가나안의 군대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길로 메롬 물가로 가서 그들을 습격했습니다. 물론 습격이라는 것이 불리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작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두려움이 있을 때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작전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습격했다는 것은 이미 그들 속에 있었던 두려움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자, 이제 결론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공수표 였나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이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8절은 습격의 결과를 이렇게 보고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추격하고 동쪽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추격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그 엄청난 군대를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 주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그것도 더 넘치게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약속이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이 있는 말씀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앞으로 이루실 일들, 그리고 어떻게 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믿어아만, 믿을 때에만 능력이 되는 그런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약속은 믿지 않으면 정말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흔히 우리의 근심과 걱정의 문제, 그리고 두려움의 문제를 현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시라면 그 모든 문제들은 그저 현실의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 이런 근심과 걱정, 염려와 두려움의 문제는 더 이상 현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으면,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우리는 근심을 넘어서고, 염려를 넘어서고, 두려움을 넘어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요,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결코 근심과 걱정, 두려움 같은 것들에 붙들려서 그런 것들을 덮고 또 해결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그런 것들을 이겨내고 넘어서서 자유롭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이고, 또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승리의 삶을 살라고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여러분의 두려움이나 근심 자체, 그리고 여러분을 두렵게 하고 근심하게 하는 것들을 바라보지 마시고, 여러분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집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부터 챙기시고 그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염려를 이길 수 있습니다. 돈 걱정, 건강 염려, 자식 걱정,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심지어는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까지 모두 믿음으로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서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열려있는 이렇게 풍성하고 능력있는 인생의 약속을 놓치지 마시고 꼭 붙드셔서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시는 참 자유와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