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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8.0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열왕기상 15-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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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8월 5일 수요일




오늘 본문에서도 어제 본문에서 본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은 특히 북쪽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대 왕인 나답부터 시작해서 북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던 아합왕 직전 왕인 오므리 시대의 역사까지 그리고, 아합시대를 요약해주는 내용까지가 오늘 함께 읽은 말씀 속에 들어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말 엉망진창인 역사인데요. 때로는 꽤 긴 기간을 다스린 왕도 있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겨우 칠일 동안만 왕노릇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 속에는 두 명의 어마어마한 악역스타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북이스라엘 초대왕인 여로보암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아합왕입니다. 여로보암은 아합이 등장하기 전까지 북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 어떤 왕이 하나님 앞에서 악했다는 평가를 할 때, 기준이 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아합 왕은 드디어 여로보암은 능가합니다. 성경은 그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하려 가볍게 여기며…’라는 말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두 명의 악역스타들이 완전히 망가뜨려 놓은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들의 죄를 지적하실 때도 말씀하셨지만, 사실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전혀 왕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죄를 짓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서 나라의 반쪽을 잃어버리는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그저 나머지 절반의 왕이 된 그런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왕이 되었다는 것은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었구요.  이미 사울 왕조가 무너지고 또 다윗 왕조는 반쪽 짜리가 되었습니다. 둘 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왕이 되었습니다. 정말 기대할 수 없었던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해야할지 답은 분명합니다. 그 길로 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 길로 가는 일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그 길로 가게 되면 자신들도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첫번째 왕 여로보암부터 길을 잘못 정했습니다. 이미 지나온 이야기이지만 북이스라엘에는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성전이 없습니다. 이것은 당시 북이스라엘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자신을 따라 나선 백성들의 마음이 남쪽 유다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수를 칩니다.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서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어서 그 송아지를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 올린 신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질렀던 죄를 또다시 반복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없던 절기도 새로 만들고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그들 중에서 선발하여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여로보함의 길’이라고 말하는데요.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탈선하고 하나님을 떠날 때, 성경은 이 말을 사용해서 누구 누구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 라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거의 모든 왕들이 여로보암의 길로 가거나 아니면 더 심하게 그 길로 간 그런 역사이며 바로 그 것 때문에 점점 더 일그러진 그런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살아간 당사자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을 반복했고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남쪽 유다의 역사를 말할 때, 어떤 왕을 평가하면서 그가 다윗처럼 행했는지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다윗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로 우리아의 아내를 그렇게 취한 일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주 훌륭한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에 여로보암은 처음부터 완전히 어긋난 길을 갔고, 계속해서 끝까지 그 길을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두고 두고 남쪽 유다의 왕들을 위한 모범이 되었고, 여로보암은 두고 두고 북쪽 이스라엘의 왕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눈 먼 인도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처음에 한 사람이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개인적인 시각에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내가 살다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나의 선택은 나에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가까이 있으면서 항상 나를 지켜본 가족과 자녀들, 그리고 내 뒤를 이어서 나의 역할을 할 사람들에게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내가 걸어간 길을 그들이 이어서 걸어가게 되기가 참 쉽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살아서 다윗과 같은 길의 노릇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 자녀들, 내 믿음의 후배들이 나를 생각하면서 ‘그래! 우리 어머니는,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살지 않으셨지. 그 분은 하나님을 그렇게 섬기지 않으셨지!’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가려던 잘못된 길을 돌이키게 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우리 아버지도, 우리 어머니도 그랬는데 뭘, 예전에 보니 그 목사님도, 그 장로님도 하나님을 그렇게 섬기던데 뭘.’하면서 자기가 가는 잘못된 길을 합리화할 때, 그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쪽 유다의 왕들 중에서는 그래도 다시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회복한 훌륭한 왕들이 있었지만 북쪽 유다에는 그런 역할을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우리가 앞서가는 사람들로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주 강한 메세지가 되어 줍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삶을 다윗의 길이라고 부르시고, 여로보암과 아합의 삶을 여로보암의 길과 아합의 길이라고 부르시듯이, 우리의 삶을 향해서도 우리 이름을 붙여서 ‘누구 누구의 길’이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도록 그렇게 우리 삶의 길을 정하고 또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나의 영광이요 나아가서 우리 뒤를 이어 그들의 길을 걸어갈 우리 자녀들과 믿음의 후배들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될테니까요. 


우리 모두가 항상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잘 살피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