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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8.19.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열왕기하 13-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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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아주 독특한 나라입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하나의 나라가 분명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교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의 교훈을 그대로 일반적인 나라들에게 적용시키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교훈을 적용하려면 교회의 운영이나 성도 개인의 삶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곧 오늘날의 교회이고 또 성도들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왕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열왕기서는 오늘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 개인과 교회를 위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하나님을 떠나서는 자신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 나라의 백성들이니까요. 오늘 한 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들고 또 성도들을 세우기 위한 수많은 방법들과 노력들이 기울여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때로 그런 노력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또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일들은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누누히 말씀드렸지만 형식이 내용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일들과 그런 일들을 통해 주어지는 결과들은 사실 하나님 중심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이 주지 않으신, 하나님과 상관 없는 것일 때도 많습니다. 이것을 이해해지 못하면 교회와 성도는 커다란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혼동하기 시작하고 그저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결과만 나오면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평가해 버립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요? 결국 이런 일들을 심각한 부작용을 남깁니다. 교회를 단순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만들고, 그 안에 풍성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이 사라져 버리게 만듭니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 과정에서 성도들은 점점 더 세속적인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교회와 성도는 자기의 자기됨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중심을 지키기 위해서 항상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아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중요해 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도자들의 역할입니다.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성격은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지도자는 그가 아무리 탁월하고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저 하나님의 대리자요 수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지도자 자신이나 성도들이나 자꾸 이 사실을 망각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의 능력에 의존하려고 합니다. 설교를 잘 한다, 카리스마가 있다, 비전이 훌륭하다, 행정능력이 좋다 등등… 그 사람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애쓰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기능적인 능력에 집중합니다. 이것은 정말 교회에게는 치명적인 것인데요. 결국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따르는 곳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이 관건이 되는 그런 곳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교회의 지도자들이 과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역할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13장은 시작하면서부터 그 이야기를 분명하게 들려 줍니다. 유다왕 아하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왕으로서 여로보함처럼 악하게 행했습니다. 여기서 악함이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긴 것인데요. 2절은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셨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지도자가 잘못했는데 그 결과가 그 지도자를 따른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지도자와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은 모두가 다 똑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똑같은 방향으로 갈리가 없지요. 한 두 사람도 아니고 한 나라 전체가 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고 무조건 함께 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런 것에 동의해서는 안되고 또 그런 것은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죄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성도는 지도자를 보는 눈이 달라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똑똑하지 않아도 좋고 빈 구석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단지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라면, 그 일을 자기 자신이나 하는 일의 성공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믿고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 갈 수 있고, 그래야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공동체가 될 수 있으니까요. 


또 한 가지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리심 속에서 살아간다고 할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으로 하면 율법이라고 할 수 있고, 신약으로 하면 새 계명을 중심으로 한 성경의 윤리적인 권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즉흥적이지 않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은 그 분의 법을 기준으로 해서 그 나라를 다스려 가십니다. 그래서 그 법에 순종하고 그 법에 따르는 사람에게는 복과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 가는 사람에게는 그에 따라는 징계를 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다스리심의 핵심이요 원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 중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애쓰고 힘쓰며 살아가는 분들치고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고, 반대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으며 사는 사람치고 참 기쁨을 아는 성도가 없습니다. 우리의 참 행복과 참 기쁨은 영적인 것인데, 그런 영적인 복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통치는 율법이라는 축과 더불어 하나의 축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 축은 바로 언약이라는 축입니다. 원래대로 하면 특히 북쪽 이스라엘은 망해도 열 번은 더 망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곤경 속에 던져 넣으셨다가도 건져 주시고 또 때로는 그들이 잃어버린 땅들을 되찾게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잘 한 것이나 변한 것이 없는데도 말이지요.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덕분이라고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분명히 순종은 복과 은혜로 이어지고 불순종은 징계로 이어진다는 것이 커다란 원칙입니다. 그러나, 황송하게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계적으로 그리고 칼 같이 날카롭게 적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약이라는 틀 안에서 적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이 두 가지를 항상 더불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 느슨해 질 때는 하나님의 율법을, 그리고 징계나 범죄 중에 있을 때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챙기고 또 소망을 잃지 않으면서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기쁘게 순종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도 율법과 언약을 우리 삶의 성전의 두 기둥으로 삼고서 하나님의 다스리심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이 주님의 통치 아래에서 평안하고 복스러운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