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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8.2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열왕기하 18-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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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북쪽 이스라엘이나 남쪽 유다나 그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며 또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의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그렇게 하니 하나님께서는 그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신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고 그래서 어려움은 더 심해져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손에 먼저 망해 버리고 유다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려고 애쓴 왕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노력은 항상 불완전했습니다. 항상 산당이라는 것을 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산당이란 여러 산에 마련해 놓은 크고 작은 제단을 말하는데, 이 곳에서는 하나님께 제사가 드려지기도 했지만 또 우상을 섬기는 일도 이곳에서 행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들이 이 산당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백성들이 그 산당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왕으로서 개혁을 하기는 하되 일종의 타협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히스기야의 개혁은 철저했습니다. 그는 산당들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렸으며 아세라 목상을 부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남아있던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놋뱀도 부숴 버렸습니다. 백성들이 그 뱀을 향해서 향을 피우며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히스기야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서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정말 영광스러운 칭찬입니다. 이 칭찬을 읽으면서 이 칭찬이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주어진다면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그렇지 않은 적이 많아서 이미 하나님의 이런 칭찬을 기대하기는 어려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한 사람에 대한 이런 칭찬을 읽으면 그 사람이 완전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히스기야를 칭찬한 것과 같은 그런 칭찬은 그 사람의 인생 전반에 대한 평가이지 그 사람의 삶의 모든 부분 부분, 매순간 순간이 전혀 실수도 범죄도 없는 그런 삶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그들이 삶 속에서 실수도 하고 범죄도 할 때가 있지만 그 다음에 그들이 보이는 태도와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칭찬은 그들이 일평생 한 순간도 흠없이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모습들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히스기야는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공적으로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왕은 항상 정치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지요. 특히 그 당시 유다처럼 강대국의 틈새에서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주 예민하고 내리기 힘든 결정을 더 많이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유다는 앗수르의 속국과도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해마다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히스기야는 결단을 내립니다.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앗수르를 배반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결국 이 상황은 앗수르의 왕이 요구하는 대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내어주고서야 진정될 수 있었지만 실은 그것이 화근이 되어서 유다는 또다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더욱 대대적인 공격이었습니다. 그만큼의 금을 내어주었으니 금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앗수르 군대의 지휘관은 랍사게였는데요. 이 사람은 매우 간교하면서도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우선 유다 자체를 아주 무시한 다음에 하나님의 뜻까지 들먹이며 유다 백성들을 혼란에 몰아 넣었고,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까지 멸시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나라의 어떤 신도 자신의 손에서 그 나라를 구원한 적이 없으니 하나님이라고 해서 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내린 히스기야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입고 있던 옷을 찟고 랍사게가 보낸 하나님을 모독하는 편지를 들고서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서 하나님께 모두 일러 바칩니다.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했으니 하나님이 나서셔서 그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려야 한다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셨고, 밤에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죽이셨고, 그래서 이제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오던 산헤립은 길을 돌이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서 훌륭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도, 또 전혀 실수와 흠이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살았지만 유다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만큼의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을 의지해서 앗수르를 극복하려고 했지요.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다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리로 돌이킵니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그 일을 하나님께로 가져다 놓습니다. 저는 이것이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 삶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실수와 잘못으로 얼룩지게 되지요. 그리고 그런 일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 삶의 어느 부분인가를 심각하게 무너뜨리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또 다시 현실적인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는 자신의 마음을 찟고 그 문제를 하나님을 의지하며,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들고 나가서 하나님의 손에 놓아드려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로 가는 일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수해도 범죄해도 그래서 고통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겨도 거기서 주저 앉거나 사람에게 의지하려 하지 마시고 그 문제를 먼저 하나님께로 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잘못갔던 길을 회개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면 그것은 또 한 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통로가 될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하나님되심을 드러내시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족하지만 그래서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참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