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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8.27.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역대상 10-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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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8월 27일 목요일




오늘부터 역대기를 살펴볼 텐데요. 새벽에 함께 묵상하는 일은 역대상 10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로서는 읽기도 힘든 사람들의 이름만 주욱 나열되어 있고, 그 족보는 사실 하나의 메세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원래 하나의 가족이었습니다. 중요하게는 아브라함부터,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야곱으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가족이었지요. 그러던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루게 되었고,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 큰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결국 멸망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역대기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가 끊겼다가 다시 시작된 셈이지요. 이런 경우 역사의 맥을 다시 찾고 다시 잇는 일은 족보를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을 되찾게 되니까요. 우선 이 족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이라는 한 명의 조상에서 시작된 신앙공동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서로가 가족인 동시에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지요. 그런데, 이 족보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족보는 처음으로 가 보면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래서 실은 온 세상에 사는 모든 족속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족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얘 하나님을 그 근원으로 하는 사람들이며 나아가서 온 인류가 하나임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셈입니다. 물론 이 족보는 그 중심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있지만 말이지요.  원래는 한 사람 아담을 조상으로 하는 하나의 가족. 이것이 역대기를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온 인류의 모습이며, 그것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여 세우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하고 이루어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역대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왕들입니다. 하나의 나라는 한 명의 왕이 다스리게 되니까요. 결국 족보는 왕족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그 왕들의 역사는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야기로 끝났다가 다시 고레스의 칙령으로 본토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이것은 인간인 왕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인간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과 결국 이 세상은 한 분의 완전한 왕을 기다려야 한다는 메세지를 던져 주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아담을 조상으로 하는 한 가족의 나라,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릴 왕,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대하는 책이 바로 역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왕의 실패를 바라보는 일은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 일이 참 왕이시고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온전히 바라보게 하고 그 분께 소망을 두게 한다면 역대기는 해야할 일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왜 왕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결국 그런 쇠락의 길을 걸어갔는지를 살펴 보는 일도 오늘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역대기는 기본적으로 왕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이야기는 사울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애석하게도 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가 왕으로 세워졌다는 이야기 다음에 곧바로 다윗을 도왔던 용사들의 이름과 군대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11장 10절부터 12장 40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입니다. 초대 왕이 아니었으면서도 결국 왕으로서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대표적인 왕이 될 정도로 현실적으로도 그리고 영적으로도 참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다윗도 한 나라의 왕이 되어 그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용사들과 군대의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양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 왕은 반드시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왕도 혼자서 위대해지는 법은 없지요. 위대한 왕이고 커다란 업적을 남기는 왕일수록 그만큼 큰 군대와 돕는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장수들이 없고, 그 장수들을 따르는 수많은 군사들이 없으면 그 왕의 위대한 나라는 세워질 수가 없고 또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의 시대라고 해서 달랐던 것은 아니었죠. 나라가 강대하면 강대할수록 더 큰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 군사력으로부터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일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왕과 이 세상의 나라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입니다. 힘 위에 세워지고 또 힘으로 유지될 수 밖에 없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지만 둘째로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힘과 권세와 능력이 우리 왕되신 주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나라를 힘으로, 무력으로 다스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능력을 주로 섬기시는데 사용하십니다. 힘이 아니라 섬김으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렇지만 그 분의 나라도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처럼 자기가 맡은 곳에서 섬길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힘으로 다스렸던 나라, 수많은 용사들과 군사들의 힘 위에 세워지고 그 힘으로 유지되었던 나라는 결국 무너졌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 누구도 헤치거나 죽인 일이 없어도,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이 그 목숨을 내어주면서 섬겼고 또 그 분을 닮은 수많은 그 분의 백성들이 그 분처럼 섬기는 섬김을 더해갔어도 무너지지 않고 이 세상 속에서 점점 더 강해지고 분명해져 왔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온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그 분의 종이며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의 부하들처럼 힘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섬김으로써 주님을 섬기고 또 그 분의 나라를 세우고 섬깁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다윗이니까요. 결국 온 세상은 그 분의 나라, 그 분의 사랑의 섬김이 능력이 되고 권세가 되는 그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까지 우리의 자리에서 힘이 자라는 대로 서로를 섬기고 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섬기는 그런 사람들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날, 주님이 온 우주의 왕으로 오시는 그 날 그 섬김이 우리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그 날을 바라보면서 주님 닮은 섬김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