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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08.30. 주일오전 - 기업으로 주셨으니2(여호수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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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여호수아 12장 1-8절


 


지지난 주 금요일이었나요?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잠시 텔레비젼을 시청하는 중에 그 날도 우리 가족이 즐겨보는 생활의 달인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요리사들이 방송에서 인기를 끌고 있어서 그런지 생활의 달인에서도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의 달인’이라고 극한의 환경 속에서 캠핑을 하면서 일정기간 생존하는 것을 취미이자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두 사람과 두 사람의 중국요리사를 두 사람을 각각 한 사람씩 짝지어 주고 무인도에 데려다 놓고 며칠 동안 살아남게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요리사들에게 칼과 커다란 중식요리 프라이팬 하나씩만 주고 나머지는 거처나 음식이나 무엇이든 알아서 조달하면서 살게 했습니다. 물론 요리재료는 주로 생존의 달인들이 조달해야만 했습니다. 두 팀을 섬 두 곳에 흩어 놓았는데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살아 남아야 하니 별의 별 아이디어가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두 팀 중 한 팀에서 하루는 그야 말로 대박이 터졌습니다. 대나무로 4시간 동안 커다란 통발을 만들었는데 거기 커다란 물고기 두 마리가 잡힌 것입니다. 이 팀은 그것을 자기들 거처 앞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팀이 지나가다가 보았는데, 그 때 이 팀은 식재료를 거의 구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그 팀의 나이 지긋한 중식 요리사가 자기 파트너인 생존의 달인에게 저 사람은 저렇게 잘 구하는데 당신은 뭘하느냐는 식으로 농담 반 진담 반 투덜댔습니다. 그 때, 그 파트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교하면 불행해 집니다. 비교하지 마세요.”하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교가 발전을 가져 온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비교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자신과 남을 비교하고 자기 능력과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소유와 자신의 소유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치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성공한 사람들은 분명히 우리들보다 더 행복하고 더 만족해 하며 살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더욱 더 비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보다 어떤 면에서든 우위에 있는 사람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은 더 큽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가져다 주는 만족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진짜 만족이 아닙니다. 그 만족은 공허하고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교만하고 집착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만족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만족이 사라질까봐 그리고 그 만족을 주는 대상이 사라져 버릴까봐 노심초사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비교에서 오는 만족을 주는 것을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그 만족조차도 금새 불만으로 바뀌어 버리고 맙니다.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비교하면 불행하다.’ 우리는 누구나 이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알기는 알아도 비교는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뼈 속에 새겨진 습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됩니다. 비교하지 않는 일에 성공했다 싶으면 금새 또 다시 내가 더 나은 것을 찾으려고 하고 또 이미 그런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을 저울질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는 과연 이 비교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분명히 100퍼센트 완벽하게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비교가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그 비교가 나를 불만과 불행에 빠뜨리는 일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비교를 벗어나는 방법은 있습니다.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살고 열등감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사는, 그런 비참하고 자유가 없는 상태로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각각 요단 동쪽과 요단 서쪽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넘겨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정복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만큼 차지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더 이상 약속의 땅을 정복해 가는 일에 지도자의 역할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자기 시대에 차지한 땅과 또 앞으로 차지할 땅을 각지파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요단강 동쪽은 이미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 르우벤 족속 그리고 갓 족속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요단강 서쪽 지역만 각 지파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이야기가 이런 저런 짧은 일화들과 섞여서 14장부터 21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 땅들은 대충 뭉뚱그려서 분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가족이라는 것이 요즘 가족처럼 네 사람이나 다섯 사람쯤 되는 작은 숫자의 가족이 아니라 가문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땅은 각 지파의 자손들에게 그들의 가족을 따라서 분배되었습니다. 성경은 그 지역 지역을 그저 여기서 부터 여기까지라는 식이 아니라 어디 어디 어디라고 굉장히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땅의 분배가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굉장히 세밀하고 자세하게 이루어 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땅이 곧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고 이스라엘 각 족속과 가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은혜와 복이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대충 되는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아주 정밀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대충이 있어도 하나님께는 대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일은 가장 정확하고 분명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며, 그 누구도 빼놓거나 차별함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나 은혜를 생각할 때 기본적으로 마음에 두어야 할 원칙입니다. 


그런데, 땅이 이런 식으로 분배되어질 때, 먼저 그 땅을 이렇게 저렇게 잘 나누어 놓은 후에  각 지파와 각 가족의 대표가 나와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어떤 지파가 어느 지역을 차지하고 어떤 가족이 그 중에서 어느 동네를 차지하게 될까를 결정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번 정해지면 자자손손 살아가야 하는 땅을 결정할 때,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이 참 우스꽝스러운 일처럼 보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제비뽑기란 그저 결정하기 까다로운 일을 결정하는 복불복식의 도박으로 생각되니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몫의 땅, 대를 이어 자자손손이 살아갈 터전을 결정할 때, 제비뽑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조금은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일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만약 나라에서 이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서 지금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저 건너 편 땅을 이리 저리 구획을 지어 놓고서 이제부터 제비뽑아 골라잡는 그 땅을 뽑는 사람의 소유가 되게 해 주겠다고 한다면 장담하건데 모두들 그러자고 할 것입니다.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제비를 다 뽑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다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든 그냥 멀리서 바라볼 때와 그것이 현실이 되어서 눈 앞에 놓여지게 되면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입니다. 제비를 뽑기 전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제비를 뽑고 나서 보니 내가 뽑은 땅이 옆 집 김씨가 뽑은 땅보다는 조금 좋은 땅이지만 뒷집에 사는 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이씨가 뽑은 땅보다는 훨씬 값이 덜 나가는 땅이라면, 그 때도 모든 사람들은 제비뽑기의 결과에 승복하고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분배 받을 때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나누느라고 나눠도 그게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땅은 조금 크고 어떤 땅은 더 작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땅은 비옥하지만 어떤 땅은 황무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땅일 수가 있구요. 어떤 땅은 평지가 많지만 어떤 땅은 산지만 잔뜩 있습니다. 가장 심한 경우는 어떤 땅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한 땅인데, 다른 땅은 여전히 가나안 족속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있습니다. 이전에 싸웠던 그 어떤 족속들보다도 강한 사람들이 손에 말입니다. 우리 지파는 좋지 않은 땅인데, 옆 지파는 좋은 땅입니다. 우리 집 땅은 아직 차지하지 않은 곳에 있는데, 옆집 땅은 이미 정복한 땅에 속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이런 차이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았겠지요? 바보들도 아닌데, 어찌 그걸 모를 리가 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지파들과 그 지파에 속한 모든 가족들은 자기들이 뽑은 땅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대대로 살아갈 땅을 이런 식으로 결정할 수가 있느냐고 항변하지 않았고 이번 제비뽑기는 그래서 무효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제비뽑기라는 제도를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 방식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제비뽑기란 말그대로 복불복을 결정하는 궁여지책에 불과하지만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확인할 때 사용하는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제비뽑기를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사실 성경적으로 보면 제비뽑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어떤 것을 결정하기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결정지어 놓으신 것을 사람 편에서 확인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능력이 없어서 그게 그렇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줄 증거가 꼭 필요하니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마다 제비를 뽑아 얻은 땅은 그저 어쩌다 보니 자기들에게 주어진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은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서 정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그 땅은 원래부터 자신들에게 주어질 몫의 약속의 땅,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들 몫의 분깃이었던 것입니다. 제비뽑기는 그저 그 일을 명확하게 하는 사후절차였구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 그리고 그 지파에 속한 모든 집안들은 자신들이 제비뽑은 땅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준비하셨고 또 약속하신 대로 자신들에게 주신 땅으로 믿었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완전하게 아시고서 정해 주신 곳이니 바로 그 곳이 자신들을 위한 최고의 땅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성도가 성도 아닌 사람들과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매사에 완전히 정확하시고 또 실수가 없으시다는 것,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를 손해 보게 하시거나 해꼬지 하지 않으시는 다는 것, 나에게 항상 최선의 것, 최고로 알맞는 것을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이것을 의심하지 않을 때, 그 성도는 비로소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수입, 내 자녀, 내 남편, 내 아내, 내 집, 내 자동차, 내 능력 등등… 사실 우리가 ‘나의’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과 비교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위만 쳐다 보고, 더 좋은 것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우리들은 그런 비교를 통해서 불평과 불만, 그리고 자신이 불행하다는 근거 없는 확신에 빠집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정도가 심하든 그렇지 않든 이런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직장과 내 수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내 자녀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인가요? 그러면 내 남편은, 내 아내는 어떻습니까? 내가 사는 집은 어떻습니까? 그런 것들은 그저 내가 내 눈에 보기에 좋은대로 내 마음대로 고른 것입니까? 이니지요? 우리는 그런 것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셔서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라고 믿고 고백하고 있지요? 물론 그런 것들 중에는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고른 것들이나 그저 욕심이 나서 취한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런 것들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내 곁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런 것들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실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나의 유익을 위해서 내 곁에 놓아두신 것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것들에 대해서 불만과 불평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당장 ‘나의’라는 수식어를 마음대로 붙일 수 있는 것들만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줄로 재어주신 구역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십니까? 돌만 많고 샘 하나 없는 불모지처럼 여겨집니까? 거기서 뭐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같이 그렇게 여겨지십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게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약속의 땅의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약속의 땅은 원래부터 믿음으로만 취할 수 있는 땅이고 믿음을 통해서만 가꾸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일입니다. 그 믿음으로 그 곳을 나에게 허락한 최고의 땅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약속의 땅이 정말로 나를 위한 복된 곳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우리가 나의 삶의 자리, 내 삶의 모든 조건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하나님께서는 그 곳이 왜 나를 위한 약속의 땅인지, 어떤 의미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를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이 적어도 나를 위해서는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최고의 땅이 되게 해 주십니다.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 여러분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비교에 빠지기가 쉬운 시기입니다. 그리고 그 비교 때문에 스스로의 삶의 모양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흐르게 할 수 있는 그런 시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의 삶에 주어져 있는 것들을 올바르게 대하는 것은 그만큼 더 중요하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저는 무엇보다도 제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너무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럴만도 했지요. 저의 장애는 소아마비 후유증인데요. 제가 두 살 때 이 질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질병에 걸릴 때 저에게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실 소아마비 백신도 맞았었습니다. 그런데도 단지 제가 그 병이 돌림병이었던 시기에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도 모두가 걸린 질병도 아닌데 그 질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뛰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이 장애 때문에 10대와 20대의 대부분을 불평과 피해의식, 그리고 열등감과 분노 속에서 살았습니다. 절룩 거리는 뒷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계단을 오를 때도 남들보다 앞서서 올라가기를 꺼려 했고, 항상 남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가 생겨도 속앓이만 하고 고백한 번 제대로 못했지요. 다리가 온전했다면 아주 당당했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뭘 잘 해도 전혀 내가 뭘 잘한다고 생각하질 못했고 따지고 보면 나를 좋아했던 여자아이들도 꽤 많았지만 스스로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확신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런 세월이 최소한 30대에 들어설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것을 거의 완전하게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 한 5-6년 정도 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보니 그 동안 제가 저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추측들은 하나도 맞는 것이 없었습니다. 근거도 없었습니다. 그저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불행해 하면서 그 아까운 세월을 흘려 버렸던 것이죠. 지금은 그런 세월들이 참 많이 아깝습니다. 내가 진작에 지금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을 알고 믿을 수 있었다면, 그 장애조차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있습니다. 


혹 자꾸 여러분을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 빠지게 하고 그래서 여러분을 힘들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면 그런 것들이 다 아무 짝에도 소용 없는 것들이고 또 아무 유익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중고등부 학생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머리 때문에, 가정환경 때문에,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놓여있는 이런 저런 상황 때문에 주눅이 들고 실망하게 됩니까? 왜 나는 이것 밖에 안 되나, 왜 우리 집은 이 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드나요?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지금 여러분의 삶을 이루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속에 놓아두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완전히 다 아시는 하나님,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 전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여러분의 삶의 일부분으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은 절대로 결론이 아닙니다. 그저 과정이고 하나의 계단이지요. 앞으로 얼마나 기름진 땅으로 변할 지 모르는 그런 땅, 말하자면 씨앗과 같은 땅입니다. 각각의 지파와 가족들에게 분배되었던 땅들은 그들이 그 땅을 믿음으로 정복해서 살아갈 때까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게 하는 거친 땅에 불과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충분히 살아 보아야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험은 자꾸 여러분에게 당장 느껴지는 것들이 전부라고 믿게 만들려고 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여러분의 삶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세요. 내 인생은 내가 믿음으로 정복해 가야할 약속의 땅이라고, 정복하고 나서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그런 땅이라고 말입니다. 지금 당장만 보지 말고 그 믿음으로 끊임 없이 여러분 자신을 설득해 가세요. 비교와 열등감, 그리고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제대로 이겨내는 방법은 이렇게 여러분의 삶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 모든 여건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 믿음을 확실하게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은 끊임 없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비교하면서 살라고, 비교하면서 교만해 지며 비교하면서 불행해 하면서 살아가라고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장 내가 살아가는 삶의 조건 조건들을 보면서 일희일비하라고 이 세상에 살게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각각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다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각각의 사람들에게 허락하시는 삶의 조건들도 다 다르고, 그 각자에게 요구하시는 요구수준도 다 다릅니다. 비교해 보면 내 것이 남들의 것만 못하게 여겨지고 그래서 힘겹고 실망스러울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평하게 되고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살아가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그런 시간은 순간에서 끝나야 합니다. 그런 비교는 전혀 의미가 없고 가치도 없고, 그런 비교가 주는 생각과 느낌들은 모두 다 거짓이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것들을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삶의 자리가 다 다르고 각각의 삶의 조건이 다 달라도, 아내가 다르고 남편이 다르며 자녀가 다르고 며느리가 다르고 시부모가 다르고 부모가 다르고 경제적인 상황이나 능력이 모두 다 달라도, 때로는 그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도 그 모든 것들은 모두가 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내 삶의 줄로 재어준 구역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며, 나에게 나눠주신 내 몫의 분깃입니다. 믿음으로 차지하고 믿음으로 가꿔가라고 나에게 나눠주신 나의 땅말입니다. 그걸 믿지 못하면, 그 믿음으로 나의 땅, 나의 분깃을 바라보지 못하면 그 땅은 완전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복된 땅 위에서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하며 그 귀한 땅을 불평과 불만으로, 열등감과 좌절로 채우며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삶의 조건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반응은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지금 내 삶 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이 모두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나에게 가장 알맞는 내 분깃이라는 것! 항상 이 믿음으로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들에 흔들리는 여러분을 설득해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 족한 줄 알며 사는 경건의 참 능력을 누리시고 그 믿음으로 여러분에게 주신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화되어져 가는 은혜를 누리며 감사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