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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9.16. 새벽기도 - 성경읽기와 묵상(역대하 16-18장)


20150916D (#1).mp3.zip





설교일 :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사람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좋게 변할 수도 있으니 참 커다란 장점이지만 나쁘게 변할 수도 있으니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애석하게도 좋은 쪽 보다는 나쁜 쪽으로 향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스스로에 대해서 조심스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아사는 우리가 어제 살펴 보았듯이 정말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찾고 또 그 마음을 지켜냈기 때문에 구스 사람 세라와의 전쟁 이후 유다는 그의 재임 35년까지는 전혀 전쟁이 없이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유다를 다스린지 36년째 되던 해에 전쟁이 터졌습니다.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쳐들어 온 것인데 바아사는 중요한 길목에 라마를 건축해서 아사를 고립시키려고 했습니다. 전쟁에서도 지게 되고 또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지요.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런 일은 대개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일수도 있고, 또 시험일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아마 뒤쪽의 의미가 강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약간의 경고성이 있기도 하구요.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성전 곳간에 있는 금은을 내어다가 보내면서 도움을 요청했고, 벤 하닷은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공격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본토로 돌아오게 하려는 작전이었고, 이 작전은 적중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보면야 이보다 더 지혜로운 결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이런 결정은 완전히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하나니를 보내 그 의견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사는 하나니를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중에서도 아마 비슷한 비난을 한 사람들을 학대했습니다. 아사는 변질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평안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잊어버렸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화는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그는 성전의 금은을 그에게 내주면서까지 벤 하닷의 도움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변질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보내신 선지자와 의로운 사람들을 가두고 핍박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단지 자신을 비난하고 기분 나쁘게 했다는 이유에서 말이지요. 


성도에게 더 위험한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성도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평안한 시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잊어버리면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겨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찾아온 어려움을 이전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서 해결하려는 그런 마음과 태도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면서도 이상하게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교만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힘’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의지합니다. 자신을 의지하구요.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교만입니다. 그러니까 오랫동안의 평안이 성도를 교만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평안을 구하면서도 그 평안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서 보다 오히려 평안 중에 자신을 더 많이 살펴야 하며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할 때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지킬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는 그런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아사는 말년에 이렇게 잘못된 길을 갔지만 그의 아들인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서 정도를 걸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께만 구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백성들에게 보내서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게 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실질적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려는 여호사밧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복을 주셔서 그 나라를 아주 강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도 완전했던 것은 아닙니다. 여호사밧도 그렇게 강하고 부해지자 손을 잡으면 안되는 사람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바로 북쪽 이스라엘의 최악의 악명높은 왕 아합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가문과 결혼을 해서 인척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려고 했고 또 동맹을 맺어서 바깥으로부터 오는 위험에 함께 대처하려고 했겠지만, 그리고 그런 효과는 있었을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에게 영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동맹 때문에 여호사밧은 함께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자는 아합의 청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결국 선지자 예후의 따끔한 예언을 듣게 됩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도는 평안할 때, 걱정이 없을 때, 일이 잘 되어 간다고 생각될 때일수록 더 많이 조심해야 합니다. 더 민감하게 자기 마음을 살피고 생각을 살피며, 자신의 선택 하나 하나를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평안에 감각이 마비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리기가 어려워 집니다. 평안하십니까? 그러면 더욱 더 자신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계속 복으로 남아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평안한 가운데서도 자신을 지켜낼 줄 아는 영적인 겸손과 실력을 갖춘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