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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9.17.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역대하 19-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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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9월 17일 목요일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잘못과 실수를 전혀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인간인지라 죄성에 이끌릴 때가 있고, 지혜가 부족하여 옳지 않은 판단을 내리기도 하고, 또 무언가 집착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실수를 저지른 후에, 잘못된 선택한 것을 깨달은 후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취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사도 하나님께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사는 자신의 죄를 지적하며 하나님의 징계를 이야기하는 선지자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여호사밧은 그런 점에서는 아버지 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여호사밧도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거의 동일한 징계에 대한 통보를 받았지요. 그렇지만 그는 그것 때문에 더욱 더 훌륭한 왕의 자리, 아니 하나님의 종의 자리로 내려 갔습니다. 19장을 보면 그 이야기가 주욱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그는 직접 유다 땅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성경은 여호사밧이 백성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다고 말하는데요. 이것은 여호사밧이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관계를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 일을 백성들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한 것이 아니라 나라 구석 구석을 다니면서 직접 소수의 사람들과 더불어 행했으니 그 일은 그만큼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는 재판관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재판이란 사람을 위한 일입니다. 재판의 결과에 따라 정의가 세워지면 그 혜택은 사람들이 보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재판은 원래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재판관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대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재판관들은 사람을 위해서 일하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재판관들이 자신의 일을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판관들은 재판이라는 힘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게 되기가 쉽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정의는 어그러지고 사람들은 억울하게 고통당할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의 법이 이렇게 무너져 있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당하며 법조차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은 모두가 다 법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 동안 이들이 법을 정의를 세우고 사람들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예루살렘에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장들 중에서 사람들을 세워서 제사와 관련된 일들과 또 중앙으로 가져오는 재판에 관계된 일들을 제대로 감당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호사밧은 유다 땅이 하나님의 그의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땅이 되게 했습니다. 아주 실제적으로 말이지요. 


이런 회복의 결과는 그 이후, 나라가 커다란 위기에 부딛혔을 때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한 번은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이 연합군을 만들어 여호사밧을 공격하려고 쳐들어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여호사밧은 물론이고 모든 유다 백성들은 여호사밧의 공포에 따라서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그 일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이 싸움은 너희 싸움이 아니라 나에게 속한 싸움이라고 그러니 너희는 싸울 필요가 없이 그저 내가 싸우는 것만 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군대 앞에 레위인들로 구성된 찬양대를 세우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말입니다. 전쟁도 시작되기 전인데, 이미 승리의 찬양을 부르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적군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그들 사이의 동맹이 깨지게 하셨고 그래서 서로를 공격해서 모두가 다 죽게 만드셨습니다. 그 덕분에 오히려 유다 백성들은 싸움한 번 하지 않고 엄청난 양의 전리품을 선물로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한 소문은 주변의 나라들로 퍼져 나가서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유다 땅은 오랫동안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또 한 번의 실수를 합니다. 물론 이 실수가 그가 버림을 받는다든지 혹은 유다를 위험에 처하게 한다든지 하는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지만 해서는 안되는 선택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북쪽 이스라엘 왕인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은 것인데, 아하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심히 악한 왕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이 하나되는 것과 이스라엘이 그렇게 해서 더 부강한 나라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그 또한 다윗의 후손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에 있어서 만큼은 성경이 여호사밧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또다시 사람을 보내셔서 여호사밧을 경고하시고 두 왕이 힘을 합해 만든 에시온게벨의 배들을 모두 부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 많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그 일을 평생 포기하면 안됩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죄를 지어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따끔한 징계를 받아도 계속해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도는 자기가 무엇에 집착하는지, 자신이 무엇이 약한지 그것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특별히 신앙의 과정에서 그것을 제대로 다루어 낼 능력을 길러가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정직하게 세우며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하기 위해서 애쓰면서 날마다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면서 말이지요.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세워가셔서 더욱 더 풍성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