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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9.2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역대하 29-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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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9월 22일 화요일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세 명의 유다왕이 나옵니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가 그 세 사람인데요. 세 사람의 왕이 하나님 앞에서 보였던 모습은 각자가 다 달랐습니다. 우선 웃시야는 처음에는 하나님을 아주 잘 섬겼습니다. 4절과 5절을 보면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 애석합니다. 안타깝구요. 4절의 기록이 그의 평생동안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의 신실함은 스가랴가 사는 날 동안만 계속되었습니다. 그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광장이 강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웃시야는 교만해졌고, 스스로 제사장 노릇까지 하려고 하다가 나병에 벌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병 때문에 그는 왕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계속 유다를 다스리지는 못했습니다. 


웃시야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된 요담은 끝까지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요. 그렇지만 그는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성전에 들어가 함부로 분향하다가 그런 징벌을 받았으니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많이 두려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결정은 개인적으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왕으로서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성전에 들어가는 일에 소홀하자 백성들 또한 자신의 길을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요담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갔기 때문에, 그래도 유다 백성들의 탈선이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고 나라는 굉장히 강성해 졌습니다.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아하스는 자기 선대의 왕 두 사람과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갔습니다. 다윗의 길이 아니라 북쪽 이스라엘 왕들을 흉내냈습니다. 우상을 부어 만들고 아무 곳에서나 분향을 하고 이방사람들을 흉내내서 자기 자녀들을 불살라 제사를 드렸습니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고 북쪽 이스라엘의 왕에 손에도 붙이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메섹에 포로로 잡혀갔고 하루 동안에 12만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돔 사람과 블레셋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아하스가 하나님 앞에서 망령되게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유다를 낮추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하스 왕이 저지른 최악의 만행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유다를 낮추셔서 다메섹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하게 하시자, 그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대신에 오히려 다메섹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아람 왕들의 신이 그들을 도와서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으니 자기도 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그 신들이 자기 편을 들어주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참 어리석습니다. 자신과 유다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다메섹의 신들이 다메섹을 도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메섹 사람들을 자기를 징계하는 채찍으로 사용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미 영적인 눈이 흐려질 대로 흐려진 아하스는 그 일을 다메섹 사람들의 신들이 다메섹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승리라고 생각하고는 그렇다면 자기도 그 신을 섬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하스는 그 일을 위해서 성전의 기구들을 모아 모두 부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폐쇄하고 예루살렘 구석 구석에 다메섹의 신들을 섬기는 제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양하게 했습니다. 


이 왕들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요. 첫번째 이유는 스스로 잘 되고 성공한다고 생각할 때, 잘 나간다고 생각할 때, 그 마음과 생각이 교만해 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기에게 필요한 것,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것들이 다 자기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다른 것이 하나님보다 더 힘있고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우상이든, 물질이든, 성공이든, 아니면 그 어떤 것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이 더 힘있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은 뒷전으로 밀리고 우리는 그것을 섬기고 그것에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에 빠지면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보다 더 힘있고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의지하고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함 없는 모습입니다. 신실함입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것,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어떻다고 해도 그 길 가기를 그만두지 않는 것. 그래서 끝까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놓치지 않고 경험하며 누리며 사는 것. 성도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상황이 변하고 그 상황에 대한 판단이 어떻다고 해도 주님을 바라보는 눈 만큼은 흐려지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더 강한 것 같이 보이고 더 유용해 보이는 것이 있을지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잡는 손의 힘은 약해지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과 변함 없이 함께하시며 선대 해 주실 것이고, 여러분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이리 저리 흔들리지 않고 변함 없이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붙들고 살아서 그런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