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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9.2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역대하 29-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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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9월 23일 수요일





역대하 29장부터 33장까지 다섯 장이 모두 히스기야 왕에게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성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히스기야 또한 완벽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스물 다섯 살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왕이 되어서 29년 동안 남쪽 유다를 다스리는 동안 신앙적으로는 전혀 한 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2절을 보면 히스기야를 다윗과 비견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사실 저는 히스기야가 다윗보다 그 길을 가기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시대의 유다는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 보다 영적으로 훨씬 더 무너지고 망가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망가진 것은 고치기 쉬워도 아얘 부숴진 것을 다시 고치는 것은 훨씬 더 힘드는 일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히스기야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그의 열정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히스기야가 무너진 이스라엘의 신앙을 세울 때, 그는 결코 쉽게 그 일을 하지 않았고 어쩌면 자기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히스기야가 유다의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우리 신앙을 회복하고 바로 세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대개의 성도들은 모두 자신의 신앙이 좀 더 뜨겁고 좀 더 진지하고 바르기를 원합니다.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신앙 안에서 그런 변화들을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변화를 일구어 내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그런 소원이 있는데도 우리들은 그런 일을 그렇게 드물게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합니다. 우리 자신이 그 소원의 방향을 움직이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있고 생각은 있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삶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유여서 싱겁게 여겨질 정도이지만 저는 이것이 우리의 신앙 회복이 그렇게 더디고, 우리가 올바른 신앙으로 가는 일이 그렇게 힘겨운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히스기야는 레위인들을 모아놓고 지난 이스라엘의 역사가 왜 그렇게 엉망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면서 이제 모두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내 아들들아 게으르지 말라” 히스기야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이스라엘 안에 두어서는 안되는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만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마음을 현실로 바꾸는 일을 도울 레위 사람들을 모았고, 그들을 향해서 우선 성전 안에서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그 일에 헌신하기 시작했고 16일만에 성전을 완전히 깨끗하게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마음이 있을 때 움직였고 그것도 즉시 움직여서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만약 뭉기적거리면서 이 사람 저 사람들과 의논하려고 하였다면 이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일이 더욱 더 어려워 졌을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마음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을 때, 그와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성전청소가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끝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교회의 영적인 회복에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마음은 있지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고, 움직이더라도 너무 늦게 움직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서 처음에 가졌던 마음도 약해지고 또 스스로 많은 장애물들을 자기 앞에 가져다 놓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성전을 청소한 후에 히스기야가 명령한 것은 속죄제를 드린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전을 깨끗이 하는 기쁜 일이 끝났는데 왜 히스기야는 지도자들을 모아 함께 속죄제를 드린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이 하나님 앞에서 많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건물인 성전을 깨끗하게 했으니 이제는 진짜 성전인 백성들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해도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일로만 가능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정말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만나 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회복은 항상 이렇게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고백하고 뉘우치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이 회복을 영적인 부흥이라고 한다면 그 부흥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진정한 마음으로 부터만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부흥을 외치고 기도하는데도 전혀 부흥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제까지 한국교회가 지어온 죄, 그리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죄는 그냥 내버려 둔 채로 영적인 회복만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는 절대로 참으로 복된 신앙과 영혼의 회복은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속죄제를 드린 후에, 그 다음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헌신의 의미가 그리고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의미가 강한 제사입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여 용서를 받은 후에, 비로소 하나님께 헌신하고 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의 영적인 회복도 이런 순서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죄 고백과 용서를 통해 하나님께로 가는 바른 길이 열린 후에 하나님께 헌신하고 또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 모두 일어나야 비로소 참으로 복되고 온전한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회복시킬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그 동안에는 영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그렇게 하나니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성전에서 더러운 것을 치웠고, 그 다음에는 속죄제를 드렸고, 그 다음에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헌신과 교제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그리고 우리 광현교회가 이렇게 회복되는 은혜를 달라고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복을 향한 마음을 주시고, 그 마음을 몸으로 옮겨낼 수 있는 결단과 의지를 주시며, 우리 속에 있는 죄악들을 정당하게 처리 한 후에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런 회복을 일구어 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회복이 바로 나로부터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 위에 이런 참으로 복된 회복을 허락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