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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9.24. 새벽기도 - 성경읽기와 묵상(역대하 31-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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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9월 24일 목요일





성전을 정비하고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히스기야가 한 일은 유월절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뭐가 대단한가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거의 지키지 않았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하겠지만 정말로 그랬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또 자기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회복하는 아주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은 출애굽 사건인데 유월절은 이것을 기념하는 절기였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엉망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억을 소중이 여기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 하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성도는 더 이상 성도다운 성도일 수 없습니다. 성도의 성도다운 삶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억과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유월절을 지킬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다 기뻐하고 즐거워 했습니다. 30장 25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서 온 회중들과 심지어는 나그네들까지도 기뻐했다고 하고, 솔로몬 시대 이후에 이런 기쁨이 없었다고 까지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월절을 지킬 것이라는 왕의 명령을 가지고 찾아간 전령들의 이야기를 비웃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그들은 바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자손들인데요. 이들 속에서는 이상하게도 일부 사람들만이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듣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왔을 뿐입니다. 그 당시 이미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스불론, 그러니까 북쪽 이스라엘의 최북단 지역까지 사람을 보내서 유월절을 지키는 일이 유다만의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일이 되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수고를 했지만 북쪽 이스라엘에서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따른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비웃었을 뿐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사실 하나님을 떠나 징계를 받고 있는 상태였는데도 말이지요. 이것이 완악해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해 지고 냉소적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인 부흥을 가로 막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쁘고 복된 삶을 가로 막는 가장 넘기 힘든 장벽이지요. 그래서, 성도는 비록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마음만큼은 너무 완고해 지지 않도록, 하나님을 향한 무관심이나 신앙에 대한 냉소적인 마음이 자기 마음을 채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유월절을 지키고 나서 히스기야가 한 일은 레위인들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레위인들이 마음 놓고 성전의 일을 돌보게 해 주지 않고서는 힘들게 이룬 영적인 회복을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매우 실제적으로 일했습니다. 원래 레위인들은 자기 몫의 땅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열 한 지파들이 레위인들을 부양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레위인들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렇게 레위지파와 나머지 지파들을 구체적인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 일도 아주 훌륭하게 성공했습니다. 각 지파에서 가져온 십일조가 너무 풍족해서 레위인들이 충분하게 먹었는데도 많이 남아서 그 남은 것들을 정리하는 데만 수일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유다의 신앙은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려고 쳐들어 왔습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렇게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킨 후에 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가 유다를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요? 얼핏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적인 회복과 큰 기쁨이 있은 후에 멸망의 위기를 맞이하게 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일이 이렇게 밖에 안 보이는 이유는 우리는 일이 일어난 처음만 볼 수 있지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진짜 이유나 그 일의 결과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할 수 있는 방어준비를 마치고서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그런데,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그렇게 한 것 까지 알고서  하나님을 마구 모욕하고 유다 백성들을 협박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의 군대를 하루 아침에 초토화 시켰습니다. 대개 전쟁은 징계의 도구입니다. 특히나 다른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지요. 그렇지만 이번 전쟁은 그런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제 자리를 찾은 유다에게 이렇게 너희가 내 편에 서면 너희에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지 보아라 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청각 교재였습니다. 영적으로 최적의 상태에 있었던 히스기야 왕은 당연히 이 일을 하나님께로 가져갔고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 큰 승리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충분히 하나님 편에 서면 하나님은 완전히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를 찾아오는 역경과 어려움은 사실 하나님이 진짜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징계나 형벌이 아니라 말이지요. 우리가 살면서 여러가지 역경과 어려움을 만나야만 한다면 이런 종류의 것들이 많은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정말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통로가 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에 닫혀져 있거나 혹은 점점 더 냉소적이 되고 있지 않는지 자기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는 적당하게가 아니라 확실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확실하게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확실한 것인지를 경험하여 알 수 있으니까요. 


항상 하나님께 더 확실하게 가까이 다가가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함께 해 주시는 은혜와 능력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