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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0.26. 새벽기도 - 성경읽기와 묵상(욥기 18-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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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0월 26일 월요일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과 또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볼 때 사용하는 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그런 틀이 없고 또 선입견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전혀 말이 안되는 주장입니다. 이 세상에 틀 없이, 그리고 선입견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틀은 그저 있는 틀이 아니라 그 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틀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그 틀 안에서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분명히 그 틀에 맞는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모든 것들을 그 틀에다 넣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가 되고 그런 판단으로 인해서 억울함을 겪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굉장한 교만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고 섭리해 가시는 이 세상의 일이란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틀 안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듯이 욥의 친구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을 계속 고집합니다. 그것만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그 틀에다가 욥이 당하고 있는 일들을 억지로 끼워넣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자신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지요. 친구들은 애둘러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욥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욥이 당하는 고통의 이유를 욥의 죄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저 죄에 대해서는 징벌로 갚아주시는 그런 분에 불과하고 또 반드시 그런 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틀에서 보면 욥의 고난은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작은 고통이나 어려움도 아니고 정말 그 모든 일들이 한 사람의 인생에 그것도 한꺼번에 일어났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고통이었으니 그런 벌을 받을 때는 그럴 만큼의 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듣다 못한 욥이 다시 입을 엽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그 틀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일들을 말합니다. 21장 7절 이하입니다.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


욥은 인생에 대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사람들이 분노하게 하는 문제를 끄집어 냅니다. 그것은 악인의 형통이라는 문제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계속해서 악인은 곧 망한다,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만 해 왔지만 사실 그것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이 빠진 그림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사필귀정이라는 밝고 바른 그림은 있었지만 악인의 형통이라는 어둡고 뒤틀린 그림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그림이 모두 있어야 이 세상의 현실이라는 그림이 완성되는데 일부러 불편하고 불쾌한 부분을 빼버린 것입니다. 그러느라고 반쪽짜리 그림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렇지만 욥은 바로 그 문제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이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이냐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악인이라고 모두 이 세상에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 먹고 잘 사는 악인들이 더 많습니다. 큰 악을 저지른 더 악한 악인일수록 머리가 좋고 힘이 세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교묘히 피해 다니지요. 그 자녀의 자녀들까지도 떵떵 거리고 살아갑니다. 선한 사람들은 그 반대입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 대접받지도 못하고 떵떵 거리며 살기도 힘이 듭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 버린다면 우리는 전혀 선하고 바르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적어도 현실적으로만 보면 그렇습니다. 사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현실을 보면서 악한 사람들을 흉내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지요. 


다른 친구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만, 욥은 알고 있고 또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욥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떠났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19장 25절 이하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욥이 기대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훌륭한 사람이 나서서 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 주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욥이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신 대속자입니다. 그 대속자가 땅 위에 서서 지금은 전혀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의 문제를 풀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욥은 자신이 그 대속자가 땅에 서는 것을 보게 될 때, 자신은 그 대속자를 낯선 자처럼 바라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욥만큼 그 대속자가 오기를 갈망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풀기 어려운 질문들은 우리 힘으로 풀 수도 없고, 세상이 전부 달라 붙어도 그 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 답은 주님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그 분은 지금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도무지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바로 잡으실 것이고, 그 날이 되면 이렇게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힘썼던 사람들은 영원한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될 것이고, 그 때까지 형통한 듯이 보였던 악인들은 영원한 어둠 속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욥기 속에 우리 주님에 대한 이런 강렬한 소망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르게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복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대신 영원한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또 소망합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그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그 소망과 기다림으로 악한 유혹을 이기며 영광스러운 성도의 자리를 지켜 나갑니다. 


항상 우리의 구속자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반드시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되돌려 놓으실 그 분을 소망하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 날이 되면 그 분을 기다리며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아간 욥을 닮은 사람들이 가장 영광스러워질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보이는 세상의 유혹과 절망을 이겨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