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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0.28.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욥기 23-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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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0월 28일 수요일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 우리가 욥기를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만났던 욥에 대한 성경의 설명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정말 있었을까 싶지만 욥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말을 마치 수학공식을 이해하듯이 그렇게 해석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평가이지 액면 그대로의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그래서 욥이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소개되어 있는 욥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의인’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인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그저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뜻도 담고 있지만 이 말이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올바른 삶도 그 관계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기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욥의 모습이 때로는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의인’의 개념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지 완전무결한 하나님같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란 항상 하나님을 인식하고서 살아가는 사람이며, 자기 삶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너무 중요해서 하나님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묻고 묻고 또 묻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기도 하고, 또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하나님께 항변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항변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조금 섭섭하게 했다고 터져 나오는 가벼운 불평이 아니라 엄청나게 억울한 일을 겪거나 커다란  불의를 볼 때 터져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23장을 보면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사람에게 이해받으려고 하거나 사사람에게 하소연을 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습니다. 욥이 그렇게 한 이유는 하나님이시라면 사람들처럼 자신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거나 배척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의인의 모습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성품을 지니고 계신 분이신지 잘 압니다. 모두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또 신뢰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이렇게 하나님을 찾고 찾아도 하나님은 보이질 않습니다. 도무지 만날 수가 없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그가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뵐 수 없구나” 이런 난감한 상황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답답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라면 들어주시고 혹 대답을 주실 것 같아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는데,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 보려고 무진애를 쓰는데 하나님은 마치 욥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이리 숨으시고 저리 피해다니시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찾거나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욥이 그러다가, 그렇게 하나님을 찾았지만 못 만나는 경험을 계속하다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찬양으로도 만들어진 정말 아름답고 은혜로운 말씀인데요. 바로 이것이 욥이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흔히들 이 말씀을 읽을 때, 단련하는 도구를 고난이나 역경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고난이나 역경도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합니다. 제대로 겪어내기만 하면 고난과 역경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지요. 그런데, 고난과 역경 그 자체 말고도 우리를 정금같은 사람이 되도록,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단련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런 상황 속에서 맞닥뜨리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욥이 말한 것처럼 찾아도 찾아도 만나 주시지 않는, 아니 만나주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 같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참 야속하지요. 참 화가 나지요. 평안할 때는 안 그러시더니 정작 답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타나지 않으시고 어디 계신지 항상 계시던 곳에서 찾아도 보이지 않으시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시고 또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맞으시나, 아니 정말 하나님은 계시는 분이 맞는가 하는 의심까지 들지요. 


그렇지만 그래서 그 일은 참으로 우리의 신앙을 단련하는 풀무불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피해 다니시는 것 같이 느껴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이 없으신 것 같으며,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붙드는 것만큼 우리의 믿음을 순전하고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또 없으니까요. 얼마나 귀한 깨달음입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경험이 바로 나를 정금같이 단련하시려는,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확실하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머물게 하시려는, 나를 더욱 더 의로운 자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연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이 없으시고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며 자리를 비우셨다고 생각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렵고 힘든데 답이 없을 때, 기대하던 도움이 주어지지 않을 때 그런 마음이 되지요. 그렇지만 그 때 하나님은 바로 그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를 더욱 더 온전하게, 더욱 더 의롭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더 확고하게 머물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드십니다. 우리의 존재와 믿음을 순도 100퍼센트의 정금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 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알고 계시면서 그렇게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때로 그런 경험을 할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가 바로 이 말씀을 사용해야 할 때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그 상황 속에서 오히려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로 다다가고 그 분을 향한 믿음을 더욱 더 신실하게 가꾸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