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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1.1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아가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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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아가서는 1장 1절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솔로몬이 지은 사랑노래입니다. 이 안에는 사랑을 찾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결혼을 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서 더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되는 모든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데요. 읽다가 보면 민망할 정도로 표현이 직접적이고 낯뜨거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구절들을 교회에서 함께 낭독하기는 쉽지가 않지요. 사실 저는 아가서를 처음 읽었을 때, 도대체 이런 야하고 천박한 이야기가 왜 성경책에 들어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가서는 분명히 조금은 닭살이 돋고 조금은 낯뜨거운 남녀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시피 성경은 이런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상자에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향한 사랑, 그리고 성도들과 교회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담아놓았습니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여러가지 관계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사실 우리가 그다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왕과 백성의 관계,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보다도 부부간의 관계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들, 율법이 그렇고 신약으로 넘어가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천국비유, 그리고 계시록에서도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성도들의 신실함과 순결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가서가 그냥 읽기에도 낯뜨거울 정도로 솔직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남녀간의 사랑이란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 남녀, 결혼을 앞둔 남녀라면 그 두 사람은 이런 모양의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 깊이 사랑하는데, 그리고 이제 바로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만나서 점잖게 이야기하다가 서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또 뵙지요.’하고 헤어지는 연인들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나면 서로 서로 눈을 바라보며, 눈이 호수 같다느니 뭐니 해야하고,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부등켜 안기도 하고, 서로 뽀뽀도 하고… 특히 남자는 여성의 겉모습 하나 하나에 매혹당하고, 그래서 남들이 들으면 닭살이 돋을 온갖 미사여구를 여자에게 가져다 붙이면서도 더 사용할 수 있는 찬사가 부족해서 안타까워 하고… 헤어질 때가 되면 헤어지기 싫어서 눈물도 흘리고… 물론 제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분명히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남자와 여자로서 이성적으로 끌리는 것이 없다면 그것을 남녀간의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랑을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있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에 대해서 잊고 있었던 것을 가르쳐 주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너무 젊잖기만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얼굴에 웃음조차 없습니다. 가슴떨리는 감정도 없고, 뜨거운 마음도 없습니다. 그 분을 보고 보고 또 보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고, 또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서 애쓰는 모습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한 사랑의 고백도 없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향한 찬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도 맡지 못하고 있고 그 분과 항상 함께 하고 싶어하는 안타까움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이 정상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은 이렇게 무덤덤하고 느낌도 없고 감정도 없으며, 우리에게 행복한 웃음조차 짓지 못하게 하는 그런 모습인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 신앙에 가장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신앙에 큰 기쁨도 없고, 만족도 없고, 감동도 없고, 또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살아가게 할만큼의 동기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은 마치 남녀간의 사랑과 같아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여인이 정혼한 연인을 흠모하는 것 같은 그런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뜨겁고, 그렇게 안타깝고, 그렇게 행복하며, 그렇게 깊은 사랑, 그렇게 기쁘고 그렇게 만족스러운 그런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성경의 곳곳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지만, 특히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강하고 뜨거운지, 신실하고 또 안타까운 사랑인지를 분명하게 증거해 줍니다. 십자가의 뜨거움과 간절함으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기쁘고 풍성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 변함 없는 사랑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가서를 통해서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과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나의 고백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고백다운 고백인지를 되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분께 반할 수 밖에 없고, 그 분께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아가서의 남자 주인공에게 반했던 예루살렘의 처녀들처럼, 또 그의 사랑을 받았던 술람미 여인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무덤덤하고 마치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들 또한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뜨겁게 그리고 깊고 기쁘게 사랑하기를 원하시고 우리 사랑이 그렇게 무르 익어갈 때,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기쁨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 사랑의 행복과 충만함 가운데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하나님의 연인, 우리 주님의 신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