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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1.16.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아가 7-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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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오늘도 저는 우리 권사님들 앞에서 아가서를 낭독하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본문 안에 남녀간의 내밀한 대화들이 많이 나오고, 여인의 몸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내용들이 여러번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정말 커다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 하나님의 우리들을 향한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그리고 그 사랑을 받는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6장 마지막 절인 13절부터 7장 9절까지는 춤을 추는 술람미 여인을 보면서 그의 남편이 된 왕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다른 곳에서 부른 노래들도 다 마찬가지이지만 7장에 나오는 이 노래 또한 자신의 연인이자 아내인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향한 최고의 찬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 부분을 읽다가 문득 과연 술람미 여인이 진짜 자기 남편의 노래 속에 나오는 것처럼 그만큼 아름다웠을까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아가서의 앞 부분이 소개하는 술람미 여인은 집안에서도 천덕꾸러기였습니다. 여자지만 오빠들 대신에 포도원으로 내몰려 포도원을 지키는 포도원지기가 되고, 그러느라고 피부가 까맣게 타고 거칠어져 버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쳐다 보고 놀리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남편이 된 솔로몬의 눈에 비친 술람미 여인은 초지일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그렇다면 둘 중에 어떤 것이 진짜 이 여인의 모습일까요? 객관적으로 보면 촌티가 팍팍나는 젊은 여인에 불과합니다. 피부는 거칠고 까맣게 그을린 여인이었죠. 그렇지만, 솔로몬이 보기에는 이 세상에 이 여인보다 아름다운 여인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입니다. 그렇게만 보입니다. 그 이유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그만큼 사랑했고 또 그렇게 큰 사랑의 눈으로 그 여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깊고 큰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니 시골 농부처녀의 모습은 간 곳이 없어지고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만 눈에 보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의 연인의 모습은 절대로 객관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만큼 그만큼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만 보이게 마련이지요. 남이 비웃은들 소용이 없습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비친 연인의 모습이니까요. 거짓일까요? 아닙니다. 연인에게는 진실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아름답고 정말로 그렇게 사랑스럽습니다. 완전하지 않아도 실제로는 아름답지 않아도 연인의 눈에는 그렇습니다.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의 눈에 여인은 항상 그렇게만 보이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실 때, 하나님은 우리들 또한 그런 눈으로 보십니다. 우리가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얼굴은 못났고 몸에는 온통 검댕이 투성이라고 해도, 남들이 쳐다 볼 정도로 형편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 정도의 깊고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그렇게 사랑스럽고 그렇게 아름답게 보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인가요? 얼마나 큰 위로인가요? 나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나도 내가 마음에 안 들때가 더 많은데, 우리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에 그런 우리가 항상 그렇게 보인다니 말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그렇게 받아들여 주신다니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큰 사랑 안에서 우리의 본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과 우리의 헌신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보아주시니 그 풍성한 사랑 가운데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가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것이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서 받고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 하나님으로 부터 받고 있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죽음같이 강한 사랑!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정말 그랬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는 죽음같이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무엇도 좌절시킬 수 없는 그런 강한 사랑으로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질투하시기도 하십니다. 스올같이 잔인한 질투로, 불길같이 일어나는 질투로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할 때 우리를 향해 질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이렇게 진한 사랑, 그리고 죽음같이 강한 사랑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 무엇도 이 사랑에서 우리와 하나님을 갈라 놓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랑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바라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에게 우리 사랑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우리 주님의 죽음같이 강한 사랑에 묶여 그 분의 사랑스러운 신부로 우리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가는 영광스러운 성도들로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