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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1.17.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이사야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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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1월 17일 화요일





이사야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과 그의 선지자로서의 행적을 적은 책인데요. 이사야는 히브리어로 ‘예사야후’라고 하는데,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이사야의 이름에는 여호와와 예수님의 이름이 모두 들어있는 셈입니다. 성경이 말해 주는 가장 중요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그 백성의 구원자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신 분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결국에는 온 우주를 구속하시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실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구약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는 책 또한 이사야서입니다. 그 분의 나심과 겉모습, 고난과 죽음까지 굉장히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사야서는 성도들이 기대하고 소망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멸망직전의 시대에 유다에서 사역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뿐만 아니라 그 당시 그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이 단지 우리들의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요 심판자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자꾸만 하나님을 나 개인을 위한 구원자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의미가 있고 더 구체적인 은혜로 와 닿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나 개인이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에만 묶여 계시고, 교회 안에서만 힘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하나님인 동시에 교회 바깥의 하나님이기도 하시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나라도 다스리시는 그 나라의 왕이시기도 합니다. 온 우주의 주인과 왕이기도 하시지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그렇게 큰 의미와 능력이 되는 이유는 그 하나님이 이렇게 온 우주와 이 세상 모든 나라들의 왕이시고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든든함과 크기는 사실 자신이 믿는다고 고백하는 하나님을 실제로 어떤 분으로 믿고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을 정말로 온 우주의 왕과 재판관으로 믿는다면, 그 믿음 위에서 살아간다면, 나의 삶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담대하고 든든한 삶을 살아갈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런 분의 눈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가려고 애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는 가볍고 부담없는 신앙이 인기가 있습니다. 그런 신앙이 너무나 인기가 있어서 그렇지 않은 신앙을 이야기하는 교회가 오히려 시대에 뒤쳐진 비정상적인 교회라고 생각될 정도이지요.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이런 하나님으로 알고 또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과연 가볍고 부담없는 신앙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그런 신앙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크고 강하신 하나님을 든든하게 믿는 믿음 가운데 살면서도 항상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겸손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애쓸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굉장히 강하고 신랄한 말로 유다를 나무라시고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실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들을 보면 검사가 법정에선 피고를 고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죄를 엄정하게 다루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의 죄는 각 분야에 걸쳐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물론이고 사회, 법률,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죄가 넘칠만큼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실만큼 말이지요. 그러면서 만약 유다가 그 죄에서 돌이키면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지금 당하는 어려움에서 걸져 주실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2장에서는 마지막 날에 있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승리와 교만하고 악한 자들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잘못된 길로 어긋나가고 있는 유다백성들에게 다시 바른 길로 돌아오라고 설득하십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고, 그 죄를 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언제나 우리를 곤경 가운데서 구해 주시는 구원자가 되어 주시지만, 우리가 계속 죄 가운데서 죄를 고집할 때는 그렇게 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또 우리가 지른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스스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고 또한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용서와 구원을 말씀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의 죄를 신랄하게 지적하시고 고발하신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종의 결함이나 부족함, 그리고 문제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얘 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죄라는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라면 그래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서도 그렇게 엄청난 죄를 지었고, 그 죄 가운데서 살았던 것처럼 사람이란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언제나 죄를 지을 수 있고 때로는 그 죄가 죄인 줄 모르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죄 자체를 가볍게 보거나 그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돌아서는 일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스스로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모든 구원은 자신의 죄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야, 온 우주의 왕이시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나의 편이 되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에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은 항상 죄로부터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방법으로 우리의 죄를 생각하고 깨닫게 하실 때, 그 죄를 인정하고 거기서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편들어 주시고 용서하시며 구원해 주시는 은혜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 스스로를 더럽힌다고 해도, 그리고 그런 죄를 지적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래서 다시 하나님이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언제나 이 은혜에 의지해서 끊임 없이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