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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2.02. 새벽기도 - 성경읽기와 묵상(이사야 31-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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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2월 2일 수요일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실 때, 반복해서 아주 큰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다른 나라들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꾸 애굽으로 도움을 청하러 가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약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또 침략을 당할 때, 그 나라보다 강한 나라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거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일이 이스라엘에게도 당연한 상식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단순한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보내시는 싸인입니다. 빨리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싸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대신에 애굽에 의지합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그 어려움을 넘어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져 버렸고, 자기를 돌아보며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또 하나의 죄를 더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가장 큰 죄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른다면 몰라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열등한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살아가라고 하시는 것은 그렇게 하면 부족한데도 억지로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능력있고 완전한 해결책이기 때문에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직접 움직이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대신에 다른 해결책을 내어놓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고 또 하나님께 여쭤보아야 합니다. 같은 해결책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임의로 택한 것과 하나님께 구해서 얻은 것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게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이 사실을 확고히 믿고 있어야 합니다. 결정적인 역할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진짜 능력은 하나님께 있지 사람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알고 그것을 자기 삶으로 옮겨내기를 바라십니다. 삶으로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경험하고 또 고백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먼저 찾고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강한 나라와 힘있는 사람들이 영원히 다스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공의로 이 세상을 다스릴 한 왕이 오십니다. 이미 한 번 오셨고 또 한 번 결정적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이 의지하던 것은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어그러지고 뒤틀리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니 힘이 있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존귀하다고 거짓말로 아첨도 해야하고 내가 의지하려는 우둔한 자에게도 같은 말로 아첨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느라고 바른 것이 굽은 것이 되고, 굽은 것은 바른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의 왕이 오시면 다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집니다. 다시는 굽은 것을 바른 것이라 할 필요가 없고 바른 것을 굽은 것이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어리석은 자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악한 자에게는 악한 자라는 별명이 붙여질 것입니다. 그 때에는 존귀한 자만이 존귀한 자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될 것이고 그것이 그의 영원한 이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하나님은 안일한 여인들과 염려 없는 여인들을 향해 경고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왜 편안히 살고 염려 없이 사는 여인들에게 경고하실까요? 그것은 그들이 안일해서는 안되는 시대에, 염려 없이 살 수 없는 시대에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성도는 이 땅에서 안일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근심 없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인 삶만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먹고 사는 문제만 놓고 본다면 분명히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참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지만 무너져 가는 조국, 허물어져 가는 자신의 시대를 볼 때, 안일할 수 없고 그저 아무 염려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해 주신 양심으로, 진리로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성도로 하여금 언제나 깨어 있게 만들고 그 세상을 위해서 근심을 가지고 기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위에서 우리에게 영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고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숲에 거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정의가 모든 것을 바로 잡고 온전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학대하는 자가 있고 속이는 자가 있는 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니, 그런 온전한 때가 올 것을 믿고 소망하는 사람들의 갈증은 더 크고 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보면 저는 참 걱정이 될 때가 많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평안하고 나만 복되게 살면 된다는 듯이 살아가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온통 자기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뿐이지 그  밖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마치 유다가 망하게 되었는데도 안일하게 지내고 근심없이 지내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살았던 이스라엘 여인들처럼 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사는 땅을 위해서 큰 일 하지 못해도 그 땅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알고 그것 때문에 함께 아파하고, 그 땅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며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슬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들이지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며, 그러면서 그저 안이하고 근심 없이 살아가는 것만이 능사라고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 웃지 않고 그 날에 웃게 될 것이고 잠시 웃지 않고 영원히 웃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품고 살아서 공의의 왕이 오실 때, 그 분을 가장 큰 기쁨으로 맞이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