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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2.18.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누가복음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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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크게 네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시몬,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신 이야기,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이야기,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 그리고 세리인 레위를 부르신 이야기와 그와 관련해서 들려주신 새 틀에 대한 말씀. 이렇게 네 가지 이야기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첫번째 이야기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거나 혹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앙적인 경험을 생각할 때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결정적’이라고 말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이야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훨씬 더 긴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그 결정적인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을 향해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마치 폭발물이 터지는 것은 일순간이지만 실제로 도화선에 불이 붙여진 순간부터 그 순간을 향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아마도 이 부르심을 위한 결정적인 사건은 베드로가 물고기로 가득한 그물을 끌어 올렸던 그 사건이었겠지요. 그리고 바로 그 사건 때문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지금 물고기 한 번 많이 잡았다고 그렇게 놀라느냐? 앞으로는 그 그물로 더 많은 사람을 건져 올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군말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겠지요.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신 일은 한참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일까요? 4장 38절 이하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열병으로부터 건져 주신 때부터 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심중에서야 그 이전부터 베드로를 부르시기로 계획이 서 계셨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실 때, 베드로가 집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집은 베드로의 집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았고, 또 예수님께서 자기 장모를 고쳐 주시는 것을 지켜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니어도 별 차이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5장에 들어가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는 이야기는 그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 사람들어 너무 많아서 그냥 호숫가에 서서 말씀을 전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이렇게 보니 밤새 조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제 그물을 씻고 있는 어선 두 척이 보였지요. 그래서 그 중 한 척을 빌리시고는 호숫가에서 약간 떼어서 배를 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배 위에 서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바로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예수님의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습니다. 이제 배 위의 두 사람, 예수님과 베드로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배를 호숫가에 대려고 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말씀은 결국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결정적인 말씀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져서 건져 올린 풍어 때문에 그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으니까 말이지요. 


그렇지만 사실 예수님께서는 마치 그물로 물고기를 몰듯이 베드로를 몰아가고 계셨습니다. 왜 베드로가 배를 빌리자는 예수님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을까요? 밤새 그물을 던지느라고 그렇게 피곤했고, 고기마저 한 마리 잡히지 않아서 몹시 마음이 짜증이 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어찌 보면 어부가 생각하기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 그리고 어부도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는 그 이야기를 거절하지 못했을까요? 베드로는 그 날 배 위, 그러니까 예수님 바로 옆에서 예수님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전하신 모든 말씀들을 가장 가까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며 그물을 던졌겠지요.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두 배 중에서 베드로의 배를 택하신 것도 예수님의 그물에 베드로라는 물고기를 잡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옆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듣게 하심으로써 베드로가 쉽게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 없는 준비를 시키신 것이지요. 그렇게 베드로를 몰고 몰아서 결정적으로 어부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시고, 그 요구를 통해 어부인 베드로를 깨뜨리심으로써 그에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렴풋이나마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된 베드로는 평생 자기의 생계를 책임져 주던 고마운 친구같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그물이 베드로를 건져 올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예수님의 그물에는 큰 물고기 두 마리가 더 걸려 들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형제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노리고 그물을 몰아 그를 건져 올리실 때, 처음부터 이 두 사람도 함께 건져 올릴 요량으로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는 것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일도 모두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 은혜로운 일들이 일어나기 전,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마치 어부가 고기를 몰듯이 우리의 삶을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순간을 향해 몰고 가십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항상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또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우연이란 절대로 없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도 완전한 우연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또한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가장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평안할 수 있고 또한 든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방향을 잘못 잡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도 말이지요. 


주님의 섭리는 어부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베드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섭리 안에서 주님은 야고보와 요한 또한 같은 소명의 사람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모든 일들 속에서 빈틈 없고 실수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면서 항상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그래서 우리 주님 이끄시는 영광스럽고 든든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