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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2.24. 새벽기도 - 성경읽기와 묵상(누가복음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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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이 세상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그들 중에서 똑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과 존재가 걸린 일인데, 이 세상에는  인격과 존재가 똑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신앙의 모양과 내용이 다양한 것을 모두 허용하고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100퍼센트 예수님 답게 믿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그래도 신앙이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만 비로소 신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드디어 예수님이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답도 주어집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역이 큰 반응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궁금해 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이런 저런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전해주러 오신 예수님께는 결코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추측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혼란을 더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더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도 하고 엘리야라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번에는 제자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말은 맞는 말이었지만 베드로는 이 말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지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말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말을 쓴다고 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을 때가 많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믿는다고 해서 그 모든 고백이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다양한 의미가 다 예수님을 향한 바른 고백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알고 있는 뜻이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뜻과 일치할 때 그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 동안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으셨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이것은 그 고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을 결정할만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백이 예수님의 자신에 대한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고백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많은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실세들로 부터 배척을 받아 죽게 될 것입니다. 물론 부활하시겠지만 이것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그들이 기다리던 구원자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대신 목숨을 내어 주시는 대속자가 되어 주시는 일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런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메시야의 다른 모습은 다 지워버리고 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자를 이렇게 믿을 때, 그 때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게 되어 있고 또 달라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나를 나로 믿는 사람이 기꺼이 가야할 길이라고,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 핍박받는 구원자를 믿는 사람이 기쁘게 질 수 있는 짐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분명히 그런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부활에 이르렀듯이, 자기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를 죽이지 않는 사람은 부활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구원자를 믿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는 일을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자기 목숨을 잃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니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다른 구원에 대한 설명보다도 정확한 설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오신 계절에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일은 우리 신앙을 위해서 참으로 가치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바로 그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을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런 주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 삶과 신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우리 신앙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고 또 우리의 십자가가 있는지,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부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바른 고백과 우리의 삶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이 세상으로부터 배척받고 고난받으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믿음으로 신앙 안에서 날마다 자신을 자기 십자가에 못 박아 참 구원과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