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1.1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이사야 64장)


20160113D (#1).mp3.zip





설교일 : 2016년 1월 13일 수요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또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은 언제나 소망 넘치고 영광스럽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져 가는 동안의 우리들의 삶은 그리 순탄하기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 중간에는 환란도 있고 고통도 있고, 하나님의 징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중에 겪게 되는 어려움 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마치 하나님께서 영영 떠나가시고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 그런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해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다가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기도 하고 고의적으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물론 이럴 때, 하나님은 성도들을 징계하시기도 하시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데까지 가게 하시는 것이지요. 아무런 싸인도 보내지 않으시고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이 생기든 그렇지 않든 문득 되돌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십니다. 완전히 떠나버리신 것 같고, 완전히 나를 버리신 것 같습니다. 마음은 불안함과 공허함으로 채워지기 시작하고 영혼의 답답함은 점점 커져 갑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그 어떤 징계나 환란보다도 크고 깊습니다. 이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때로 우리 삶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정말 정말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성도들이 그저 거기 주저 앉아서 더 이상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그저 무미건조한 형식적인 성도의 자리만을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회복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히 버리거나 영원히 떠나시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래도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럴 때야 말로 나의 영적인 상태나 내 느낌과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있는 변함 없는 사실을 붙들어야 하고, 그것을 붙들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64장 8절을 보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이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거나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떠나시고 버리셨다고 느껴질 때, 그리고 아무리 불러도 도와주시지 않으시는 것 같이 여겨질 때, 그 때도 여전히 변함 없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라는 것, 우리는 주님의 손으로 만드신 바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 이런 ‘사실’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실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영원한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영원한 언약에 두지 않고 자꾸 자기 감정이나 경험으로만 느끼고 평가하려는 것은 많이 어리석은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감정이나 경험은 쉽게 변하기도 하고 또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약은 영원합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바로 그렇게 변하지 않고 포기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초로 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하며, 그렇게 그 어떤 순간에도 은혜를 구할 수 있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도와주실 것이고 또 다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있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세월이 얼마며,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랑한 시간이 얼마며, 그렇게 하나님 곁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척 한 세월이 얼마인가  그렇다면 이제 잠시 잠깐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모르는 척 하시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인내하면서 그럴 수록 더 간절하게, 그리고 더 절실하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말고 그래도 자기 믿음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쳐야 합니다. 아무리 얇아진 믿음의 끈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놓아버리지 말고 꼭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회복시키시고 건져 주십니다. 하나님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나와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자꾸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느껴질 때, 내가 하나님으로 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다고 생각될 때, 사실 이런 순간에 기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때도 우리는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부르고,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12절에 나오는 기도자의 외침처럼 왜 여전히 가만히 계시느냐고, 왜 도와주지 않으시고 회복시켜 주지 않으시느냐고 물어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며 점점 더 그 분과 멀러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그리고 악한 마음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도 그 분의 손에 들린 빚어져 가는 그릇이고 그 분의 백성입니다.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으로 맺어진 그런 관계입니다.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항상 이 영원한 사실 위에 신앙을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기초를 떠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신앙의 발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부를 수 있는 이유로 삼아 신앙생활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그래도’ 주님을 찾고 ‘그래도’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날마다 회복시켜 주시고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