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2.18. 새벽예배 - 성경일기와 묵상(43-44장)


※ 실수로 녹음 파일이 지워졌습니다.



설교일 : 2016년 2월 18일 목요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은 그다랴를 죽이고 유다 본토에 주둔하던 바벨론 군사들을 죽인 이스마엘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 냈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워 했습니다. 바벨론의 병사들이 죽었으니 바벨론으로부터 어떤 보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백성들과 함께 예레미야를 불러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모든 뜻을 전부다 정확하게 알려주겠다고 이야기한 후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가 시작된 지 10일이 지난 후에야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너희가 이 땅에 머물러 살기로 한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다시는 뽑지 않을 것이다. 바벨론 왕이 두려워서 이러는 모양인데, 그를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고 너희들을 그의 손에서 구원해 낼 것이다.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길 것이니 그러면 바벨론의 왕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서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로 보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절대로 도움이나 안전을 구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가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내가 그들을 쫓아가서 그들이 두려워 하는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칼로 그들을 칠 것이다. 나의 분노를 너희에게 쏟아부어서 너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놀림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있는 그대로 요하난과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기껏 기도를 부탁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했던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전부터 본토에 머물 것을 주장했던 네리야의 아들 바룩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예레미야가 바룩의 사주를 받아서 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그리고 자신들을 다 바벨론 왕의 손에 죽게 하려고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백성들과 함께 애굽행을 강행했고 결국 애굽의 다바네스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에도 함께 생각해 보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궁금해 하는 것이 단순히 궁금증이나 호기심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안됩니다. 그저 호기심에서 궁금해 하면 나중에 그 뜻을 알게 되어도 그 뜻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일이 됩니다. 이중의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궁금해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만 그 궁금증을 순종으로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능력이고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애굽으로 가지 못하게 하신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원래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그 어떤 현실적인 이유로도 애굽을 의지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성도가 구원을 얻은 이후에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자신이 구원을 얻은 죄악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유다백성들은 애굽으로 가려는 마음을 먹어서는 안될 일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을 통해서 애굽을 벌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유다 백성들이 애굽으로 간다면 그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막고 싶어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하난과 백성들은 애굽으로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간 유다백성들에게 예레미야를 보내셔서 또 다시 경고하셨습니다. 계속 거기 머물면 다 죽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결국 그 와중에 도망친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그들을 징계하시면서도 그렇게 도망치는 사람을 몇 사람이라도 더 늘려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그런 말씀이었지만, 이번에도 백성들은 고집을 부리면서 이상한 소리를 해 댑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지금 당신이 우리를 향해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당하고, 또 앞으로 하나님의 큰 징계를 당하게 될 이유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 우리가 이방신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제사드렸을 때, 우리는 잘 먹고 잘 살았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상숭배를 그치자 그 다음부터 고통과 고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말은 반은 맞고 받은 전혀 사실이 아닌 꾸며낸 그런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동안에 그들은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더 부요하고 부강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요? 그들의 궤변대로 하나님이 거짓 신이시고 우상들이 진짜 신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우상숭배를 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욕심을 부리며 살아갈 수 있었으니 현실적으로는 더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지요. 우리도 이런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문제 없이 살면 그것이 무조건 우리가 잘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만큼 위험한 착각은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징계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고, 우리는 감각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거짓이었습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우상숭배를 그만둔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는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된 것이지 우상숭배를 그만 두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미화하고 정당화 하고 싶어합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는 심지어는 자기의 기억까지 조작하지요. 그러면서 그 깊고 큰 죄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것이 최선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일보다 더 선한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더 쉽고 평안하게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은 항상 같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했다고 해도 그들 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징계받는 자리에서 은혜를 얻는 자리로 나아오고 더 적은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보면 하나님 앞에 실수하고 잘못할 때도 많습니다. 이런 일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주님 앞에 정직하게 서서 허물과 흠이 있어도 항상 은혜로 다가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