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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2.2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5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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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2월 24일 수요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일부입니다. 교회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이 세상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의 일부이고 또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 중의 일부입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은 또한 하나님께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들입니다. 온 세상의 일부분이면서도 그저 일부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이 특별함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달려 있지만 아무튼 우리는 하나님께 참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작고 힘 없는 어찌보면 떠돌이 민족인 이스라엘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강하고 큰 나라들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물론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나지요. 승승장구 강대한 나라가 때도 있고, 주변 나라들의 노리개가 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나라가 통째로 사라져 버리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중심에 놓고서 그 주변의 수많은 나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거나 징계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말이 바로 ‘인생 막대기’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변의 나라들을 아버지가 자녀를 다스릴 때 사용하는 회초리처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아무리 강한 나라라고 해도, 심지어는 그 나라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째로 집어 삼킨다고 해도 그 나라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런 나라들이 단지 그 의미와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들을 주로 그 목적을 위해서 일으켜 세우기도 하시고 또 넘어뜨리기도 하신다는 것은 성경에 분명히 나와있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환경도 비슷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저 이 세상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인 우리들을 고치시고 세우시기 위해서 주변의 환경이나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비신앙적인 문화를 가진 사회적인 환경만 사용하시는 것은 아니고, 교회 안의 사람들도 사용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 주변의 사람과 환경을 우리를 위해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주변의 다른 모든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차이를 두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실 때는 거의가 다 그저 심판으로 끝이 납니다. 망하게 하시겠다고만 말씀하시지 그 뒤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는 때로는 정말 무시 무시한 심판을 말씀하시다가도 곧 이어서 회복과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무슨 죄를 지었든지 용서해 줄 것이며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심으셔서 그들을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큰 잘못을 저지르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때로 그 징계는 정말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징계는 말 그대로 징계입니다. 바로 잡고 고치시기 위해서 주시는 아픔과 어려움이지 벌을 주고 버리시기 위해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 주변의 우리보다 강한 사람들이나 사회환경을 두려워 합니다. 그 앞에서 주눅이 들게 되고, 그래서 너무나 쉽게 거기 동화되고 똑같은 길을 가는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들이며, 또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당장은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고, 주눅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똑같아지려는 유혹을 받게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유혹에 지면 안됩니다. 두려움과 의기소침해 지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존심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내가 살아가는 환경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이루어가는 장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훈련되어져 가는 훈련의 장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50장 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날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그들이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항햐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 하리라” 또 2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깨지지 않는 언약,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언약으로 묶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그 언약 안에서 온전히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안 오면 기다리고, 죄를 지으면 징계를 하시는 한이 있더라도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듭 거듭 자신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십니다. 그 일을 위해서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게 바벨론이라는 거대하고 강한 나라라고 할지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은 하나님과 더욱 더 온전히 연합해 가는 과정입니다. 잊어서는 안되는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고 지켜내면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지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잘못하고 하나님과 어긋 나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크고 작은 징계를 경험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포기하시거나 그 언약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용서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것들을 나 자신을 하나님과 언약으로 더 견고하게 묶는 도구가 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그 영원한 언약 가운데서 영원히 안전하고 평안한 그런 주님의 백성들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