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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2.25.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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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2월 25일 목요일




사람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이라는 감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감각들을 통해서 바깥 세계와 소통하며 바깥에 있는 것들을 인식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런 감각들은 우리들에게 참 고마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교통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런 감각들 덕분이니까요. 그런데, 감각이라는 것들이 이렇게 고맙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들을 속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참 위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들 중에서 가장 우리를 속이기 쉬운 것은 바로 우리의 시각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큼 인간에게 큰 유혹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전에 큰 교회에 다녔습니다.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리교회였던 그런 교회에 다녔습니다. 저는 사실 그 교회에 다니면서도 그 교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제가 알고 있는 기독교와 너무나 다른 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 교회의 크기를 보면서, 그 교회의 크기 때문에 항상 이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항상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가 이렇게 큰 교회로 서 있는 것을 보면 이 교회에는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복이 있다. 이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큰 교회로 서 있는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제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 먹고 또 성경을 제대로 알게 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 본질과 전혀 상관이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도 전혀 교회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반대로 몇 명 되지 않는 소수의 성도들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교회가 기독교 신앙의 참된 본질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인 경우도 있겠지요. 아주 드물게 아주 큰 교회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잘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고, 작은 교회는 그저 작기만할 뿐 그 안에 아무 것도 없는 그런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겉모습의 크기와 화려함을 기준으로해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 까지 판단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가 되기가 쉽습니다. 


51장에는 계속 바벨론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수로 2장, 그리고 페이지 수로 8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바벨론의 심판에 대한 말씀인 셈입니다. 예레미야에 나오는 나라들에 대한 예언으로는 정말 이례적으로 긴 분량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유독 바벨론에 대해서만 이렇게 긴 예언을 주신 것일까요? 


그 당시로서는 그 누구도 바벨론이 망할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70년 남짓한 세월이 지난 후에 그 엄청난 크고 강한 나라가 무너진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될 수 있는대로 길게, 그리고 여러가지 표현으로 말씀해 주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야 생각을 바꾸고 설득할 수 있었으니까요. 51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 모든 내용은 따로 책에 기록되어서 이제 마지막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백성들 중, 스라야라는 사람의 손에 들려져서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고, 거기서 유다 백성들 앞에서 한 번 낭독된 후에 유브라데 강물에 던져지면서 앞으로 바벨론이 이런 운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벨론에 잡혀간 유다백성들에게 바벨론이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멸망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는 알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왜 유다 백성들에게 이것을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요? 


아주 강하고 화려한 나라의 손에 조국이 망하고 그 나라의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세월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들 중에서는 그것이 자신들의 영원한 운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살아가는 동안 세월이 1년, 2년 흐르면서 유다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한 때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한 민족의 정신을 얼마나 망가뜨려 놓을 수 있는지 잘 압니다. 우리 나라는 여전히 일본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문화의 잔재 뿐만 이라 소위 친일파 문제라는 것도 우리 사회를 병들고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땅에서 살았어도 그런 문제들이 생겨났는데, 만약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아무 생각 없이 포로생활을 계속했다면 그들은 분명히 바벨론 사람들과  동화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모두 잃어버리고 바벨론 사람들 속에 섞여 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막으시기 위해서 지금 너희를 망하게 하고, 절대로 망할 것 같지 않은 바벨론도 결국 완전히 망하는 날이, 그것도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51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두를 마심으로 미쳤도다” 바벨론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강대함과 화려함을 무엇으로 사용하십니까? 세상 모든 나라를 취하게 만드는 포도주로 사용하십니다. 만약 그게 누구든 바벨론의 힘과 부유함, 화려함에 취한다면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 또한 바벨론과 같은 운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그렇게 사람들을 거르고, 또 나라들을 거르는 시금석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보이는 게 전부인 것 같은 이 시대, 이런 환경 속에서 보이는 것이 가지는 우리를 속이는 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무언가 크고 화려한 것에 끌려도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 겉모습 때문에 그저 그것을 인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바벨론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린 포도주가 가득 담긴 금잔이었던 바벨론을 생각해야 합니다. 화려하고 큰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한 발 떨어져서 그런 것들을 보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이 정말 쉽지 않고, 실제로 우리 본성은 그것을 원치도 않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술잔에 빠져서 잔뜩 취한 그런 분별력 없는 삶, 주님의 시험에 실패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보이는 것보다는 그 보이는 것 뒤에 숨겨져 있는 참되고 가치있는 것들을 보고, 그런 것들을 기준으로 나와 세상을 보는 분별력있는 성도들이 되어서 온 세상이 달려들어 나를 시험해도 그 시험을 통과하는 실력있는 성도로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