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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2.26.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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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을 함께 읽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각 장이 다른 성경보다는 조금 긴 편이어서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읽었는데요. 사실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비슷 비슷하기도 하고 또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을 써서 반복해서 기록한 부분도 많기 때문에 함께 읽는 여러분들은 약간은 지루하고 큰 감흥이 없이 읽으셨을지 모르지만 설교하는 저도 다른 책들보다 쉽게 설교를 풀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어제 이제 예레미야서도 한 장이 남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문득 예레미야서는 그랬기 때문에 더 큰 은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서가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들려준 이야기의 주제는 몇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한 없는 애정을 품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율법이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있는 언약을 깨지지 않게 지켜주는 소중한 역할을 하는 원칙들이었지요. 그런데, 율법이 이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율법을 어기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여기는 일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그 언약을 깨뜨린데 대한 응분의 책임이 따르게 되어 있었지요. 그 책임이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들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자리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북쪽 이스라엘이나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남쪽 유다나 가릴 것 없이 율법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원칙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냥 벌주시고 저주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듣지 않으실 것을 아시면서도 예레미야를 보내셔서 경고도 하시고 달래기도 하시고 하소연하기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의 이상한 행동을 통해서 절박한 심정을 전하기도 하셨지요. 그런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거듭 거듭, 사실 우리가 보기에도 하나님께서 저럴 필요가 있으신가 할 정도로 계속해서 유다백성들에게 기회를 주시고 또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수시로 깨뜨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끝까지 붙드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시면서도 항상 그 백성들에게 회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금방 낙심하고 포기하는 우리들의 습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다를 향한 엄한 징계를 말씀하시자 마자 그들을 향한 회복의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을 통해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도 우리 삶에는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사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징계인지 연단인지 시험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사실 모든 어려움들 속에는 이런 모든 의미가 뒤섞여 있기도 한 듯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유다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비단 유다백성들을 향한 약속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위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실 때 그 뒤에는 자동적으로 회복에 대한 약속이 따라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시적인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괴롭게 하고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를 더 온전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은 그것으로 끝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싸매시고 고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세째,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이고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주변 모든 나라의 운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영향을 미치시는 작은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광대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작기 때문에 우리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보다 크시고 한 없이 광대하신 분이시지만 특별히 그 분의 백성이요 자녀인 우리들에게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품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정말로 알고 그 사실 위에 우리의 삶과 신앙을 세워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을 수 있고, 우리 자신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강한 세상을 보면서도 결코 두려워 하거나 주눅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다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왕은 도망치다가 죽고,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었으며, 성전은 파괴되고 노략을 당했습니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고 본토에는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까?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런 유다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31절 이하에 보면 여호야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잡혀간지 37년이 지난 해, 에윌무로닥이 바벨론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여호야긴을 풀어주고 그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다른 모든 왕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혀 주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왕과 더불어 식사할 수 있는 영광을 주었습니다. 날마다 쓸 것도 풍족하게 받았구요. 왜 그랬을까요? 모릅니다. 그저 성경은 그 기록을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이야기로 기록해 놓고 있을 뿐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려고만 하신다면 언제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회복시키시고 높여주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언젠가는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복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희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다 무너지고 다른 것이 다 없어져도 우리 하나님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진짜 복이고 성도의 진짜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온 우주를 마음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며, 언제나 우리를 건지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시니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계십니다. 항상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언제나 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기억하며 단단히 붙들고 사랑하고 섬기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