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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6.07.0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마태복음 27장 44절-28장 20절)





설교일 : 2016년 7월 1일 금요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부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시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주시는 내용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가 들려주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마태복음의 결론이라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고 복음을 생각할 때,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우선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중심이 흔들리고 이 중심에서 떠나면 우리의 신앙은 그저 종교가 되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신앙을 참 구원의 신앙이 되게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신앙의 중심이 이 두 가지에 놓여있지 않다면 그 신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에는 약간의 도움이 될 지 몰라도, 구원이나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그런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읽기를 마치면서 과연 나의 신앙의 중심은 어디에 놓여져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내 믿음과 소망, 그리고 능력의 중심을 두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만약 내 신앙의 중심이 다른 곳에 놓여져 있다면 우리는 꼭 바른 중심으로 되돌아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언제나 변죽만 울리면서 내 신앙의 진짜 은혜와 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잘못하면 참 신앙 아닌 것을 붙들고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믿음 생활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마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졌습니다. 이 성전의 휘장은 단 한 번도 그렇게 찢어진 적이 없었고, 그 휘장 뒤의 지성소는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모든 죄값을 완전히 대신했기때문에 이제는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의 피에 의지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그 어떤 것으로도, 그 누구도 허물 수 없었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 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람되게도 거리낌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시고 또 무덤에 안치되는 순간까지, 그 모든 과정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방인인 백부장과 그의 부하들, 예수님을 섬기던 여인들 그리고 부자였던 아리마데 사람 요셉. 언뜻 보기에 별로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들은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보기에, 그리고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가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방인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 상태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은 그 당시 제대로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자는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나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 백성 되기가 더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그렇다고 써놓지는 않았지만 고백과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그들이 그렇게 열린 휘장을 통해 제일 먼저 지성소로 걸어들어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시고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만드시는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사탄의 세력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무덤이 깨지고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났던 일은 사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죽음이 정복되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도 이렇게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증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후 첫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제 이 세상에 죽음이 없는 새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첫번째 나팔소리였습니다. 이것을 흔히 ‘새 창조’라고 부르는데요.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에 새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 신앙의 중심에 놓아둘 때,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죽음과 닮아있지 않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 것은 지나갔고 이미 새 것이 되었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런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할테니 너희는 세상으로 흩어져 들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 죄 값을 치르시고, 부활로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만들어 지고 세워지게 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삶이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으며 그 능력과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예수님의 왕되심을 전하며 사는 삶입니다. 성도가 살아가야 할 삶 중에서 이보다 더 가치있고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삶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능력있는 삶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신앙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난무하지만,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우리 신앙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새 생명의 이유가 되는 그런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마음의 중심에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왕되신 예수님의 참 증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