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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07.08. 금요기도회 -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사도행전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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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28장 17-31절





오늘은 함께 사도행전을 공부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살펴 본 사도행전은 정말 귀한 책입니다. 이 책은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초대교회의 역사를 원래 모습대로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울의 서신서나 신약성경의 다른 책들 속에도 처음 교회의 역사가 언뜻 언뜻 비쳐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간접적이고 지엽적인 내용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 그 소중한 시대에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려면 사도행전에 의지해야만 할 정도로 사도행전은 정말 귀한 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도행전을 볼 때, 대개 두 가지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은 사도행전은 교회의 원형, 그러니까 교회의 원래 모습을 찾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읽고 연구하는 책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이 세상에 처음 생겨난 교회, 그것도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성령충만했던 교회의 모습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사도행전은 그런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두번째로 사람들은 사도행전을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기록한 책으로 읽고 연구합니다. 대개 은사와 기적, 그리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 바라봅니다. 한 쪽으로 치우치기 쉽다는 약점은 있지만 이것 또한 사도행전을 읽는 유익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이렇게 읽을 때, 오늘도 성령님을 통해 똑같이 역사하실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소망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도행전을 이렇게만 읽으면 하나님께서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믿게 하고 싶어하시는 가장 큰 메세지는 놓칠 수 있습니다. 나무나 숲의 일부분은 볼 수 있지만 아름답고 웅장한 숲 전체의 모습은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행전을 마치면서 처음에 사도행전이 어떻게 시작되었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을 합해 보면 사도행전의 전체 그림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것이지만 사도행전은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예수님의 약속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저 역사를 주욱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더 큰 틀에서 보면, 구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약속인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이 진짜로 이루어 졌으며, 그로 인해서 열방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마지막 이야기는 그 당시의 땅끝인 로마에 복음이 전해진 이야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도행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이야기의 스케일이 사도행전의 결말로는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님의 권능으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그런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라면 정말 복음이 로마를 뒤덮어 버리는 그런 이야기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결론은 정말 조촐합니다. 그저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해서 가이사의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머물렀던 집 안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조용하게 복음을 전하는 그런 모습으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 그려져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그런 것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하박국 선지자 같은 사람입니다. 시편을 기록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구요. 어쩌면 사람은 어느 정도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상상할 때,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결말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런 결말을 믿고 기대하는 것이 믿음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니까요. 그렇지만 실은 바로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는 일을 그렇게 힘들어하고 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실 때 실망하고 때로는 분노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말그대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이구요. 이 말은 우리의 바램과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가 때로는 너무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땅이 하늘에서 먼 것처럼 그렇게 멀다고 말이지요. 우리에게는 우리 인생이 전부입니다. 내가 사는 이 시대가 전부이구요. 그러다 보니 그러한 내 인생의 결론이나 혹은 어떤 일의 결말은 우리 자신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항상 성공적이어야 하고 그럴듯해야 하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들,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은 전부다 예외 없이 잠정적인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해 가시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재료와 도구, 그리고 그 하나님의 목적을 행해 나아가는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렇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잠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지막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재료들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 세상에서 행하고 경험하게 되는 어떤 일이 끝나고 남기는 결과나 심지어는 우리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만나는 나의 마지막 모습 조차도 결코 최종결론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 자체가 그 일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평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그 간에 내 인생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과 우리의 모든 행위들을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바라 보게 해 주실 때까지 우리는 우리 삶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고, 그 삶 속에서 행하고 경험한 모든 일들의 참된 가치와 의미 또한 완전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며 또 주님을 섬기면서도 그 모든 것들을 잠정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또 그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행전의 결론 부분이 무언가 완결되지 않은 흐지부지해 보이는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오늘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깨달음과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드디어 로마에 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이 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직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었지만, 로마에 도착하자 마자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 중에서 유력한 사람들을 초청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러한 사도 바울의 사역을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바울의 메세지가 그에게서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지는 못했습니다.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 중에서 일부는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것 때문에 유대인들은 서로 갈라지고 흩어지게 되어 바울은 더 이상 가장 사랑하는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사역 초기의 바울 같았으면 이 일 때문에 크게 상심했거나 아니면 굉장히 화를 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곧 그의 사역이 실패했다는 뜻이고 동족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이제 바울은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자신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놓으셨고 바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일을 자신의 사역을 위한 또 하나의 싸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로마의 유대인들에게 집착하지 않았고 곧바로 자신이 세 낸 집에 머물며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자신을 찾아오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치 작은 학당의 선생님처럼 2년 동안 차분하게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얼핏보면 사도행전의 결론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사실 사도행전의 결말로는 이보다 더 고급지고 멋진 결말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결말은 사도행전이라는 책을 닫혀진 문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열려진 길이 되게 해 주어서, 우리들에게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기록해 가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완결된 책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지금도 기록되고 있는 중이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이 책은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기록되어져 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이 책을 기록해 오셨고 또 기록해 가실까요? 그들은 이 세상의 기준, 눈에 보이는 결과라는 기준으로 자기 인생을 결론내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오픈해 놓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사람들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삶과 믿음을 통해서 이 약속이 계속해서 성취되어져 가는 것을 보는 그런 영광스럽고 특별한 삶으로 초청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했던 복음의 사람들은 저마다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 묶이지 않을 수 있었고, 세상에 묶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능력 아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모양은 다 다를 수 있지만 우리 앞에도 이런 삶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활짝 열려진 삶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것이며, 우리는 그 놀라운 역사의 장본인이 되고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삶을 살아서 주님 오실 때까지 쓰여질 아직 끝나지 않은 사도행전의 남은 부분을 장식하는 그런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