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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7.10. 주일오후 - 참된 성장, 참된 교육(교사헌신예배)





본   문 : 누가복음 2장 40, 52절




오늘 오후예배는 여름 수련회와 성경학교를 하기 전에 교사 헌신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헌신예배는 조금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교육부서 여름행사를 위한 우리 성도들의 물질과 기도의 헌신도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교사와 교역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 새롭게 헌신하고, 성도들은 그 뒤를 든든하게 바쳐주는 기도와 섬김으로 헌신하고… 전체 교회가 이렇게 한 가지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새롭게 섬기게 되는 일은 정말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비록 오늘 예배가 헌신예배라고 해서 색다른 모양으로 드리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새롭게 헌신을 다짐하고 온전케 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전도사님과 교사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주시고 또 돌봐 주셔서요. 앞으로도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서 한 아이 한 아이를 온 천하처럼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주님께서도 정말 기뻐하시고 여러분을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아이들 위해서, 그리고 우리 교사들과 전도사님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이해인 수녀님의 글에서 ‘사람이 나이를 먹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늙어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숙해 가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참 멋진 구절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기억해 놓고서 종종 인용하곤 하는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저 우리가 자연적으로 나이를 먹는 일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신앙에도 그대로 해당되는 구절인 듯합니다. 처음 예수 믿고서 세월이 흐릅니다. 이것을 흔히 신앙의 연륜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런데, 과연 신앙에 연륜이라는 것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륜이란 세월 자체가 만들어 내는 성숙함이나 완숙함이라는 뜻인데, 이상하게도 신앙에는 이 연륜이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당연하게 생기지는 않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나이를 먹는 일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할 때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저 시간만 보내면서 영적으로 늙어가기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학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기독교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확하게는 교육적인 목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평신도로 교회를 다니면서 한국교회가 성도들을 교육하는데 많이 약하고, 그래서 덩치는 크지만 아주 허약한 상태에 있다는 것과 성도들의 성숙도 또한 많이 낮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회를 하면서 교육이 전부가 아니라 거기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만 성도들이 성숙해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래도 성도의 성숙에 중심을 두고, 그것을 위해서 목회하는 목회가 참된 목회라는 확신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두 구절은 아주 귀중한 구절들입니다. 이 두 구절 속에는 우리 주님이 어린 시절 자라나신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인간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다른 사람들처럼 성장기를 거쳤고 성숙해 가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십니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성숙해 가야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 누군가의 성숙과 성장을 돕는 교사로서 예수님께서 성장해 가시는 모습을 담고 있는 말씀들을 살피는 일은 자신을 위해서, 또 교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서는 40절이 먼저이지만 우리는 먼저 52절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지혜 이야기는 42절에도 나오니까 거기서 함께 살펴 보기로 합니다. 예수님이 키가 자랐다는 것은 그 분이 완전한 사람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 분도 여느 아이들처럼, 그리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키가 자라고 몸이 커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몸이 커진다고 해서 반드시 동시에 성장하지 않는 부분도 함께 성장해 가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키가 자라면서 동시에 하나님 보시기에 점점 더 사랑스러워져 가셨습니다. 이것은 그 분의 존재와 삶이 점점 거룩하고 온전하게 성숙해 갔다는 뜻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만큼 깊어졌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영적인 상태가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성숙해져 갔던 것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예수님의 부모들이 훌륭한 조력자가 되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성숙해 가는 우리, 그리고 누군가의 성숙함을 돕는 우리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첫번째 목표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사랑스러워져 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점점 더 사랑스러워져 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더 깊어지는 사람일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의 성품을 점점 더 온전하게 드러내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 사랑스러워져 가야 하고, 또 누군가가 그렇게 되는 일의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사랑스러워져 가셨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그래도 믿음은 좋은 것 같은데, 인간적으로는 보면 전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좋은데 인간성을 별로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게 과연 정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금 성장의 균형이 심각하게 깨어져 있는 상태이고, 상황이 이렇다면 그의 신앙 조차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도는 점점 더 사랑스러워져 가야 합니다. 점점 더 매력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그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자기 자신이 10년전 보다 5년전이, 그리고 5년 전보다 지금이 그래야 한다는 뜻이고, 이제 그 정도 믿었으면 지금은 누구랑 있어도 그 사람을 많이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적어도 이 일에 있어서 뒷걸음질을 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지는 사람들의 특징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공격적이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일 것입니다. 최대한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자기 이익과 편안함을 조금 손해보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 그래서 다툼과 갈등보다는 평안을 만들어 내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성경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우리가 보이는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계속 하나님께 사랑스러워져 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람들 보기에도 그래야 합니다. 성도는 이 두 가지 면에서는 항상 발전을 보여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은 자라나면서 점점 더 지혜로워져 가셨습니다. 지혜란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 그리고 그 뜻을 행하고 이루는데 어떤 방법이 가장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판단력이 바로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성장해 가셨습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여갈 때, 갖추게 되어야 할 성도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수십년 예수 믿어도 어떤 상황 속에서 뭐가 하나님의 뜻인지 그렇지 않은지 분별하지 못하고 그렇게 분별해 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태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뜻을 알 때도 거기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이런 지혜에 있어서 성숙해 가는데 왕도는 없습니다. 우선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어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무엇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삶 속에 녹여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지혜도 주십니다. 기도를 통해 언제나 그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지혜가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우리가 성장해 가는 것과는 조금 상관이 없지만,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위에 머물러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은혜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 은혜를 지켜내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은혜의 능력이 우리의 참된 성숙과 성장을 이끄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은혜 안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자기 위에 머물러 있게 해야 합니다. 성도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며 성숙시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로서 성도로서, 우리는 성숙해 가야 합니다. 또 우리가 돌보는 아이들을 성숙시켜 가야 합니다.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그렇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실 때면 누가복음 2장으로 돌아와 이 말씀들을 묵상하시면서 찬찬히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가장 크게 헌신해야 할 부분이 어디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성장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될 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일답게 해 낼 수 있고, 그러면서도 자신도 칭찬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스스로를 세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축복합니다. 꼭 하나님께 사랑스러워져 가시기 바랍니다. 꼭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져 가시기 바랍니다. 점점 더 지혜로워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사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맡으신 그 어린아이를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 아이로 성숙시켜 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위에 항상 머물러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