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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07.15. 금요기도회 - 복있는 사람(시편 1편)


20160715FE.mp3.zip





본문 : 시편 1편





성도 여러분, 성도는 복된 사람들입니까? 우리들은 참 복이 많은 사람들인가요? 그렇지요? 우리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사실 시편이 우리가 시편을 만나는 맨 처음에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도는 그저 성도이기 때문에 정말 복된 사람이라는 것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일을 통해서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엄청난 특권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성도로 살아갈 때, 우리에게 가장 큰 어려움을 주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우리의 현실과는 큰 차이가 날 때가 참 많으니까요. 특별히 우리를 많이 갈등하게 하고 또 우리에게 유혹꺼리가 되는 것은 이 세상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악인’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으니까요. 그저 자기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만 잘 찾으면 됩니다. 들키지만 않고 걸리지만 않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고, 또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정말 지혜롭습니다. 정말 재빠르게 자기 길을 찾고 가고 싶어하는 유리한 곳에 먼저 도착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멈춰서기를 반복하는 사람들,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들에게는 고통과 고민이 되고 유혹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들이 행복하고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좋고 그 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참 좋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행복과는 관계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복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때로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못났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정말 행복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너희가 정말 복된 사람들이고 너희가 진짜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하실까요? 우리 말 성경에는 ‘복’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래 느낌을 더 살려본다면 복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해야 더 적절합니다. 복과 행복은 같은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복은 그저 물량적이고 물질적인 의미가 훨씬 더 강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복도 많다’라고 말할 때는, 그것은 주로 그 사람이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거나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 무조건 ‘행복’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행복은 양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관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은 복됩니다. 그렇지만 그 복이 꼭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살고,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부요하다면 복과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이란 관계적이고 내면적인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복되다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보다 겉보기에는 불편하고 복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런 관계 안에 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에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할 때,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르고 풍성한 관계, 서로를 기뻐하고 사랑하는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참된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백성인 너희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너희들이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복과 행복을 혼동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야 말로 정말 제대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또 제대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가 있고, 그 관계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 안됩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행과 불행을 평가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다시 이어진 관계가 가져다 주는 풍성함을 놓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성도의 행복은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관계에 집중하고 계속 그 관계 안에 머물 때,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고,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전에는 없었던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사랑하게 되는 변화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감정이 듬뿍 담긴 연애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읽고 읽고 또 읽을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내용이 없어도, 정말 유치한 이야기들만 잔뜩 들어 있어도 그 편지를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안에서 연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마음과 생각을 읽고, 그의 사랑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기쁨을 둡니다. 그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합니다. 중얼 중얼거리며 읽고 찬찬히 생각하며 읽을 정도로 정말 좋아합니다. 그러느라고 그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도 시간 아까운 줄 모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자신을 사랑하는 왕의 음성을 듣고 자신이 사랑하는 그 왕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비결을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기뻐하고 또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을 즐거워 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것이 많이 궁금하십니까?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서, 그 분이 기뻐하시는 진리에 대해서 무어라고 가르쳐 주는지 그것이 많이 알고 싶으십니까? 그리고 그것을 알고 깨닫고 다시 확인하게 될 때마다 여러분 마음이 기쁘십니까? 여러분, 성도는 말씀에 기쁨을 두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의 삶은 갑자기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얘 물길을 내셔서 그 사람이 서 있는 곳에 물을 대 주십니다. 그래서 그는 철에 맞는 열매가 많이 맺습니다. 가뭄이 찾아와 다른 곳에 서 있는 나무들은 다 말라 비틀어져도 잎사귀 하나 시들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그렇게 언제나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사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가 기뻐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 말씀, 그래서 그렇게 따라 살아가려고 기쁘게 헌신했던 그 말씀이 바로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온 세상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이치가 담고 있는 그런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플러스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그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기뻐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그저 막연하고 이상적이기만 할까요? 그런 사는 것이 가치가 있고 의미는 있지만 현실적인 유익은 별로 없는 그런 삶의 방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이 정하신 철이 충분히 들면 열매는 맺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갑니다. 시들지 않은 생명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물가에 심겨진 나무이기 때문에 덤으로 얻는 은혜이고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처음에는 복된 것 같아 보이고 잘 되는 것 같아 보이던 악인들의 삶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인생은 빨리 번성하는 것처럼 보인만큼 그만큼 더 빨리 쇄락해 갑니다. 저는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4절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대학시절 수련회에서 보았던 모닥불 위의 불똥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모닥불 속의 장작이 딱딱 소리를 내면서 터질 때마다 불똥들은 하늘로 날아 오릅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하고 그 불똥들은 작은 잿가루가 되어 땅으로 떨어집니다. 악인도 이와 같습니다. 겨는 겨입니다.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결국 바람불면 날아가는 것이고, 순간의 불쏘시개가 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인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말씀에 저울에  달린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판단을 통과하기에는 너무나 가볍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의 승패는 ‘복’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승패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인정해 주시느냐 하는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았던 성도의 인생, 그래서 마르지 않는 풍성함 속에서 하나님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들을 맺으며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던 삶의 가치를 인정해 주십니다. 


복되지 않더라도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느리더라도 가치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을 두고 살아갈 때, 우리는 가뭄에도 푸르르고 철이 들면 열매 맺게 하시는 은총, 의인의 모임 가운데 우리를 두시는 영원한 영광을 얻는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런 복된 삶 살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