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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7.29.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누가복음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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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7월 29일 금요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행동도 조심해야 하고 말도 조심해야 하고 또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 안에는 정말 무한정의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를 자유답게 누리려면 성도로서 조심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도로 살면서 무엇보다도 조심해서 잘 지키고 돌보아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성도다운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을 끝까지 지켜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힘이 드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성도다운 마음, 바람직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렇지만 믿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마음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습니다. 그런데, 이 때 그런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그 껍데기를 붙들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동시에 자신과 같은 껍데기를 붙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비난의 화살을 날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너무 배가 고파서 지나가다가 밀밭에서 밀을 비벼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그런 제자들을 그냥 내버려둔 예수님을 나무랐습니다. 또 다른 안식일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아얘 예수님을 빠뜨리려고 함정을 파놓기도 했습니다. 손이 마비된 한 사람을 데려다가 예수님께서 들어가시는 회당에 두고 예수님이 어쩌나 보고 예수님을 얽어 매려고 했지요. 우리의 신앙에서 마음이 사라질 때, 신앙이 종교가 되어버릴 때,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되기 쉽습니다. 안식일은 그야 말로 안식해야 하는 날입니다. 물론 안식일의 규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을 주는 그런 날이어야 합니다. 배가 고픈 사람이 밀을 조금 비벼 먹었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힘들게 살아가는 손이 마비된 사람들을 데려다가 함정으로 사용하는 악한 일을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게 참된 쉼을 주어야 합니다. 또 남에게 해꼬지를 하기 위해서 함정을 파는 것과 같은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신앙에서 마음이 빠져 나가면 그런 일을 합니다. 잘못이라면 아주 작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호되게 비난하면서도 더 커다란 자기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합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도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도 낙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삼키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을 세우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너른 평원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서 복과 화를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복되고 어떤 사람에게 화가 있느냐 하는 것은 철저히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복된 사람과 화를 입게 될 사람들을 정확하게 구분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 안에는 복된 사람의 마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복된 사람이냐 화를 입을 사람이냐를 판단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없는 복된 마음은 회복하고, 또 자꾸 고개를 드는 화를 입게 될 사람의 마음은 잘 다스려 나가는 일입니다. 복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며,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니,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보면서, 또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면서 그 마음에 간절함과 절실함을 품고 살아가게 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배부르지 못하고, ‘지금’은 부요함을 느끼지 못하고 ‘지금’은 웃지 못하지만 결국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하늘의 복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충분하고 자기 자신에 만족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서 살아가라고 하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원수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며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처럼 자비로운 삶을 살아가는 대신에 바리새인들과 같은 인색하고 날카롭기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 자신과 이 세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 마음 헤아릴 수 없듯이, 이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과 은혜로 바라볼 여유가 생기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삶과 그가 살면서 하는 모든 행동들은 모두가 다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닮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흉내내며 너그럽고 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그리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행함은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마음’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항상 복된 자의 마음과 화를 입는 사람의 마음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을 통해서 우리 안에 어떤 마음이 더 많으며, 또 많아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토록 그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우리 안에 있는 ‘지금 나’로 만족하는 높고 교만한 마음과 잘 다스려 지금이 아니라 그 때 참으로 부요하고, 지금이 아니라 그 때 웃고, 지금이 아니라 그 때 배부른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