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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08.12. 금요기도회 - 내 의의 하나님이여(시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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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 4편

설교주제 : 성도는 기도로 환란을 이기는 사람이다. 




서론과 대전제 : 성도는 기도로 환란을 이기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그 힘을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상시를 대비해서 열심히 그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마련해 놓으려고 하고, 실제로 위기가 닥치면 그렇게 마련해 놓은 힘에 의지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인맥, 돈, 권력, 지식같은 것들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것이 어려움을 이기는 가장 실제적인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도 만만치 않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저런 어려움과 위기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도 그런 어려움들을 극복하게 해 주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환란이나 어려움을 만났을 때, 사용하는 힘은 이런 힘과는 전혀 다른 힘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이 힘을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힘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이 성도의 힘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답으로 사용하고 열쇠로 사용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은 돈이나 권력, 그리고 지식같은 것들처럼 우리가 사용하고 싶을 때, 곧바로 그리고 마음대로 꺼내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그렇게 해 주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 힘은 언제나 기도를 통해 우리 삶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그럴 때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성도는 이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기고 환란이 닥쳐오면 무엇보다도 우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과 답을 구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환란을 기도로 이기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성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성도는 환란을 만났을 때, 다른 것에 의지하고 다른 궁리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만큼 성도를 성도 아닌 사람들과 구별되게 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4편에는 기도를 통해 환란을 이기는 성도는 과연 무엇을 붙들고 기도해야 하는지, 그런 성도들은 특히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복과 은혜가 무엇인지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 성도가 기도를 통해 환란을 이기기 위해서 단단히 붙들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찌보면 그저 이론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 모든 내용들은 이미 다윗 자신이 자기 경험을 통해 여러 차례 검증을 마친 것들입니다. 그만큼 실제적인 것들이고 그래서 다윗이 우리에게 소개해 주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 기도할 때, 끈질기게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하기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그저 막연하게 기도하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기도를 드릴 때, 꼭 붙들어야 할 것을 붙들고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훨씬 더 단단해 질 것이고, 우리는 더 인내하면서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인내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끝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기도하다가 낙심할 수도 있고 시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기도하되 낙심치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말씀드릴 세 가지는 굉장히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꼭 기억해 놓으시고 기도할 때마다 꺼내서 여러분의 기도의 기둥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우리의 기도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먼저 그 세 가지를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성도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것을 단단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그 사실을 단단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실체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단단하게 붙들고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이 일하실 때까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나의 의’가 되어 주신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의’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는 이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고 이 사실을 믿는 믿음에서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은 대개 하나님이 의로운 분이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결국에는 이 세상의 어그러진 모든 것들을 바로 잡으시고, 또 의인들은 상주시고 악인들은 벌 주시는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하나님을 다윗처럼 ‘나의 의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참 많이 어려워 하는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남의 의’가 되어 주시고 ‘이 세상의 의’가 되어 주실 뿐만 아니라 ‘나의 의’가 되어 주시는 ‘나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내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바르다고 하시는 길을 가려고 애쓰면 그런 나를  칭찬해 주시고, 내 편을 들어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또 결국에는 나의 삶의 어그러진 것들을 모두 바로 잡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럴 때 드리는 나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네.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 믿음이 없다면, 이 믿음이 약하다면 꼭 이 사실이 확실히 믿어지는데 까지 가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이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확신이 있을 때, 우리의 기도는 비로소 실망과 낙심을 이겨내는 인내하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우리를 선택하셨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성도는 항상 이것을 기억하며 꼭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순간 우리에게는 아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 손에 있었던 우리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리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것으로 되찾아 가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때 부터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한 사람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때부터 하나님을 위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되고, 그래서 철저히 하나님을 위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굉장히 거북해 하고 부담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점이 없지 않지요? 이것은 곧 이제 더 이상은 내가 나를 위해서, 나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 되니까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존재가 되는 것만큼 큰 복과 특권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은 그 때부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사람들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선적으로 우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곤경 가운데 놓아두시는 이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드러내시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게 해 주시려는 것이구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 소명이 맡겨져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나몰라라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책임져 주실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 중에 붙들어야 할 두 번째 확신입니다. 

3. 사람은 ‘인생들’일 뿐이다. 


셋째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인생들’에 불과합니다. 성도는 이것을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사람 때문에 억울한 것이 제일 참기 어렵고, 사람 때문에 당하는 환란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만큼 악하고 사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대단해 보이고 지금 나에게 아무리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고 해도,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인생’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다윗은 사람 때문에 정말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의 실체, 특히 악인들의 참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함하고 헛된 일과 거짓을 일삼는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이 대단해 보이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는 바람에 나는 겨처럼 허무하고 허망한 인생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것 같아도 사람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영혼이나 영원한 운명에 손을 대는 일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다윗이 ‘인생’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성도가 정말 두려워 해야할 존재는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하나님 편에 선다면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다윗처럼 담대하게 그들을 향해서 ‘인생들아’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시편 4편 말씀을 통해 성도가 기도로 환란을 이기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힘’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꼭 붙들어야 할 것 세 가지가 무엇인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다시 정리 해 드립니다. 환란 중에 있는 성도는 세 가지를 확신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나의 의가 되어 주신다는 것. 둘째,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선택된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 세째, 모든 사람들은 그저 ‘인생’에 불과하다는 것. 우리는 항상 이 세 가지를 기억하고 또 확신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환란 중에도 기도할 수 있고, 또 낙심하거나 시험에 들지 않고서 인내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고 또 인생들을 제대로 아는 기도자가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절대로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환란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