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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8.2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누가복음 23: 66-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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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셨고, 사람들을 그 나라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꼭 해결해야만 하셨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풀어놓아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죄에 묶여 살아가지 않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거저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서 생명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사람들을 대신해서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묵묵히 한 마디 불평이나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악인들의 손에 끌려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셨고, 결국 십자가의 제단 위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사람들을 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 덕분에 하나님과 사람이 온전히 화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또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 때문에 이 세상에 오실 수 밖에 없으셨고, 또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죄가 없으셨지만 죄를 뒤집어 쓰시고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뒤집어 쓰시고 감당해 내신 죄는 어떤 죄일까요? 예수님은 어떤 죄악까지도 감당하셨을까요?


사람들은 대개 이런 죄는 용서할 수 있지만 저런 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자신이 용서해 줄 수 있다고 말한 죄도 용서하기 힘들어 합니다. 사람의 용서는 죄를 대신 감당하거나 죄를 없애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이 혹은 다른 사람들, 이 세상에 대해 저지른 죄 때문에 악한 감정을 품지 않겠다는 뜻이고, 또 그것을 자기  손으로 갚아주지 않겠다는 뜻 정도이지요.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용서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감당하신 죄에는 크기의 한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뒤집어 쓰시고 감당해 주시고 용서해 주신 죄에는 종류의  제한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돌아기시기 까지 예수님 주변에는 그야 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메시아를 핍박하고 못 박은 죄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말 사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악한 일들은 다 행했고, 그러면서 사람으로서 품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교활하며 비겁한 마음들을 죄다 품었습니다. 거짓, 협박, 폭력, 모독, 배반, 권모술수, 공적으로 또 사적으로 가장 질이 좋지 않은 죄악을 행했고, 가장 비인간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러한 그들의 죄악과 악한 마음들 중에서 단 하나라도 이런 마음은 용납할 수 없다, 이런 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죄와 악을 전부다 묵묵히 짊어 지셨고 마음으로 다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골고다 언덕에 못 박히신 후에 그렇게 자신을 못 박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죽음의 자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나 끝까지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 보았던 사람들도 있었고 또 백부장이나 공회원이었던 아리마데 사람 요셉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악을 행한 적이 없고, 예수님을 향해서 악한 마음을 품은 적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그래도 조금은 덜 비참한 죽음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죄가 없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들 또한 죄인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 십자가 위에서 이 사람들도 용서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의 죄도 감당하셨습니다. 


큰 죄도 있고 작은 죄도 있습니다. 더 악한 죄도 있고 덜 악한 죄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척 보기에도 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또 그냥 보기에도 정말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고 여겨지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작은 차이도 아니고 무의미한 차이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그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 피 흘려주시지 않으면 안되는 죄인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모두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생각할 때마다 사람들의 입장에서 죄를 생각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리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우리의 죄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는 사라지고 자기 의만 커집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기도가 단지 그 때 예수님을 못 박았던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을 위한 기도였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어떤 죄인이었고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신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잊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사죄의 은총을 잊지 않고 그 감격과 은혜속에 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