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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09.23.금요기도회 - 자기는 인생 뿐인 줄 알게 하소서(시편 9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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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9월 23일 금요일

설교분문 : 시편 9편 13-20절



[도입] 불의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에게는 시험이 있다


자신이 계속해서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거나 혹은 이 세상의 불의한 모습을 지켜 볼 때, 우리들의 마음은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또 시험을 당합니다. 우선 우리가 계속 반복되고 끝나지 않는 어려움 가운데 있게 되면 낙심과 절망에 빠지게 되기 쉬운데, 이런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사람의 신앙은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모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 그 성도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몸도 마음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이것이 고난과 불의에 대해서 조금은 소극적인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시험이라면 비교적 적극적이고 더 반항적인 사람들은 자신도 자신을 힘들게 하고 또 세상을 아프게 하는 악하고 힘있는 사람들 처럼 되고 싶다는 유혹을 더 강하게 받습니다. 실제로 자기도 모르게 이런 유혹에 넘어가서 믿음은 있는 것 같지만 사납고 거칠며 또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 그런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어려움과 불의가 우리에게 주는 시험과 유혹이 참 많지만 성도는 이 두 가지 시험에는 더욱 더 조심해야 하고 또 꼭 이겨내야 합니다.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자신의 신앙을 냉소적인 것으로 만들어서도 안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사람들을 닮아가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을 크게 병들게 하는 일이고 나아가서 자신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리로 옮겨 놓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두 가지 시험은 그 어떤 시험들 보다도 위험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 시편 9편의 나머지 부분을 함께 살펴 보려고 하는데요. 우리가 다윗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이런 시험을 당할 때, 그 시험을 이기고 다시 온전한 믿음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일에 많이 유익할 것입니다. 꼭 기억해 놓으셨다가 내 신앙이 냉소적이 되어져 갈 때, 또 악한 사람들처럼 되려는 유혹을 만날 때 다시 믿음을 챙기고 세우는 귀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의 현재의 구원을 믿을 때, 냉소와 비관주의를 이길 수 있다.


먼저 13절을 보면 다윗은 시편 9편의 뒷부분을 이런 기도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다윗은 여기서 먼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여호와를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님’이라고 자세히 풀어서 이야기 합니다. 다윗은 지금 절실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헤아려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기도는 약하고 소극적인 기도 같아 보입니다. 그저 보아달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기도는 사실 하나님이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변함 없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그런 분이라는 확신 속에서 나온 기도입니다. 다윗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을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켜 주실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님” 그러니까 ‘지금 그렇게 하시는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똑같이 그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분이었고, 다윗은 지금 그 믿음을 기도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냉소와 비관적인 마음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패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죽음의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우리를 일으키시는 분이십니까?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자리에 서게 하시는 그런 분이십니까? 항상 변함 없이 그렇게 하시는 분이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그렇게 변함 없는 분으로 변함 없이 믿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우리의 믿음 사이에 존재하는 갭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변함 없이 그런 분이신데,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부분적으로만 믿거나 혹은 그러셨다가 안 그러렸다가 하는 그런 분으로 밖에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낙심하거나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신앙으로 이어지게 되고 말이지요. 우리가 낙심하게 되고 그래서 냉소와 비관적인 신앙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항상 ‘나를 죽음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님’이라고 부르며 그런 하나님을 붙들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음과 믿음을 지키는 그런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2. 악인의 운명을 알아야 힘센 악인이 되려는 유혹을 이길 수 있다. 


일단 짧은 기도를 마친 다음 다윗은 갑자기 우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악인에 대한 진실을 들려 줍니다.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다윗이 그 동안 악하게 사는 사람이나 혹은 악한 나라들을 살펴 보면서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들이 결국에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 스스로 자멸하는 그런 길을 가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짧은 기간동안에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악한 사람들일 수록 더 힘 세고 더 잘 되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도 아무런 어려움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다윗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유혹을 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실제로 몇 번은 그런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구요. 그렇지만 정신을 차리고 이 세상을 좀 더 길게 바라보니 악한 삶을 살며 남에게 손해와 상처를 입히면서도 승승장구했던 사람들과 나라들은 결국에는 모두 자신의 꾀에 자기가 빠져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람들의 힘과 지혜 그리고 그들이 가진 것을 본다면 그들은 절대로 무너지고 넘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지키는데 정말 천재적이고 집요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치밀한 계획과 방비책을 다 세워놓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그들의 세계가 천년 만년 서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어느 재력가들이나 정치가들을 보면 거의 항상 바로 그 부분이 문제를 일으키고 그들을 넘어 뜨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움직여 가는 원리로 본다면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악한 사람들이나 악한 나라들을 살펴 보면서 깨닫게 된 것처럼 말이지요. 사람들은 자꾸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봅니다. 대를 이어 충성스럽게 악한 삶을 살아가는데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잘 사는 사람들, 심지어는 몸까지 건강하고 자식들까지 잘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뒤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시험하시는 시험이며 하나님께서 놓으시는 덫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나서서 악한 사람들을 잘 되게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악한 사람들이 잘 되어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그들을 따라가고 싶어하는 악한 사람들에게는 모범이 되고 언제나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시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까? 그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악인이 정말로 잘 되게 하실까요? 끝까지 잘 되게 하실까요? 만약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하나님은 악한 씨앗에서 선한 열매가 맺히도록 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런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악인의 형통은 모든 시대를 살았던 성도들에게 가장 큰 시험거리였습니다. 그것은 때로는 성도들을 좌절시켰고 때로는 성도들을 타락하게 만들어 악한 길로 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악인의 형통은 실상이 아니라 허상이며, 그들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얽어매고 망하게 만드는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방식이니까요. 그러는데 걸리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저울에 달아보시고 우리 믿음을 달아보시는 유예기간에 불과합니다. 언제나 악인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서 힘있는 악인처럼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시험과 유혹을 너끈이 이기시기 바랍니다. 


3.  의인에게 주시는 은혜를 알 때 힘 센 악인이 되려는 유혹을 피할 수 있다.


다윗이 세번째로 생각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결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잊어버리시거나 실망시키시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악인들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대조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나라들이 그러하도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들은 물질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론 악한 사람들로 부터 괴로움을 당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그럴 수 있지만, 여기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뜻은 그만큼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뜻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면서 악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악한 사람들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구요. 


다윗은 악인의 결국은 ‘스올’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의 이야기 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것입니다. 다윗은 앞에서는 스스로 꾀에 넘어가 자충수를 두게 되는 것이 악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은 스올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스올은 죽은 자들이 땅입니다. 영원한 절망만 있고 소망이 없는 곳,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잊혀진 지옥의 모델과도 같은 곳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은 그 곳으로 보내신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궁핍한 자를 잊지 않으시며 가난한 자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시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자신과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보다는 힘들고 부족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 잊어버리신 것처럼 느끼게 되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정을 전혀 헤아려 주지 않으신다는 실망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말합니다. 잠시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그런 감정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그렇지만 기다려라, 하나님을 믿고 인내해라,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으신다, 그런 사람들을 영원히 실망시키시는 그런 분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방식대로 믿고 살아가는 일은 사실 우리를 굉장히 지치고 힘들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실제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는 정반대가 되는 것이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 세고 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유혹을 이기고 끝까지 이 길을 가려면 우리에게도 다윗가 가졌던 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궁핍한 자를 잊지 않으시고 가난한 자들을 실망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자에게 반드시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여기서 일시적인 것으로는 아닐지라도 그 나라에서 영원한 것으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확신을 가지고 외로움과 실망을 이기며 믿음의 길을 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영광을 상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4. 결론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19절과 20절에서 다윗은 마지막으로 악인들이 자신이 인생일 뿐임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만, 자신이 인생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저 인생일 뿐입니다. 코 끝에 숨이 끊어지면 더 이상 산 자의 땅에 머물 수 없는 그런 작고 부질 없는 인생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최고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꾸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고 죄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우리 자신이 인생일 뿐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나는 인생일 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또 의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죽음의 문에서 나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악인들처럼 스스로의 꾀에 빠져 하나님 앞에서 망하는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런 성도들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가 스스로 인생일 뿐임을 깨닫게 하셔서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