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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20.04.05. 요한복음 15장 1-16 "내 안에 거하라"(요한51)

 

 

날짜 :  2020년 4월 5일 일요일

본문 :  요한복음 15장 1-16절(1-6절)

 

제가 부교역자로 섬길 때, 종종 학습을 받는 성도들을 교육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육이라고 해 봤자 한 시간 남짓 문답서를 읽으면서 꼭 필요한 내용을 강의하는 정도가 다였지만, 강의를 한 그 다음 토요일에는 문답을 받기 위해서 모인 그 분들에게 몇 가지 질문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고 답을 적어 제출하게 했는데요. 그 첫번째 질문은 항상 “예수님은 당신에게 어떤 분이십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참석하신 분들은 저마다 친구, 보호자, 목자, 상담자, 기도를 들어 주시는 분 등등… 참 다양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답들을 몇 년동안 읽으면서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감성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틀린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보호자이시고 목자이시며 상담자이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그런 분으로 믿고 있지요. 하지만 성경은 그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정말 예수님답게 믿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그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진짜 은혜와 복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라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심으신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하나님은 유대 땅이라는 포도원에 이스라엘이라는 최고급 품종의 포도나무를 가져다 심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아예 열매를 맺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포도나무를 뽑아 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이라는 옛 포도나무처럼 열매맺는 일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참 포도나무’이고, 하나님은 그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는 농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농부이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참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라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는 열매를 맺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가 아니게 되니까요. 그래서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모순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예수님께 붙어 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런 가지들이 있을 수 있고, 그런 가지들은 아버지께서 제해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가지가 그런 가지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을 거창하게 꺼냈지만, 실제로 어떤 가지가 그런 가지일까를 생각해 보면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는 딱 한 가지 경우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말입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런 가지는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만약을 대비한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런 가지가 된 선례가 있으니까요. 그게 누구지요? 그렇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늘 예수님과 함께 다녔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먹고 자고, 그 분께 배우고, 또 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았지요. 그렇게 그는 예수님과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매를 맺지 못했고, 그래서 그렇게 잘라내 버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의 우리의 관계는 절대로 피상적인 관계가 되면 안됩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님께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그런 상태로 남아 있으면 안됩니다. 오늘 믿는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것은 영적으로 정말 위험합니다. 그것ㅇ 그 사람을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그 길을 갔습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런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이것이 그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였는데요. 그들은 이미 깨끗해졌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이미 어떤 열매를 맺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그들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으셨지요. 이 말씀을 듣는 제자들이 얼마나 안심이 되고 좋았을까요? 우리들도 모두 이 복되고 기쁜 말씀을 듣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음 말씀으로 넘어가지 전에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귀한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가지를 다듬을 때 사용하시는 도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제자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들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 모든 말씀이 그들의 믿음이 되고, 그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들로 제자들을 깨끗하게 만들어 오셨습니다. 열매맺는 것을 방해하는 부분들을 잘라내고 다듬어 오셨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할까요? 은혜도 좋고, 위로도 좋고, 격려와 축복도 좋지만, 말씀을 대할 때 그런 것과 더불어, 아니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 말씀으로 ‘우리 자신이 다듬어 지고 깨끗해 지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더 많이 맺을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 말입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6절과 17절 말씀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모든 말씀이 전부 다 그저 듣기 좋은 말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훨씬 더 많은 말씀들이 제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거북하게 하는 말씀들이었지요. 정말 이해가 안되고, 굉장히 아픈 말씀들도 정말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님의 말씀들이 대부분 그러니까요.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끝까지 들었습니다. 다 이해하고 소화할 수 없어도, 어렴풋하게나마 그 말씀 속에 생명이 있고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꾸역 꾸역 마음에 담고 생각에 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래도 어떤 열매를 맺고 있었고,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가지로 준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많고, 얻어야 할 것도 많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그래서 열매를 더 많이 맺는 가지로 준비시켜 주는 것은 그 말씀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가지가 전지 작업을 당할 때 당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고통이나 불편함 때문에 말씀을 피한다면 우리는 거룩해 질 수가 없고, 열매맺는 가지로 깨끗하게 준비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저는 그 때 거의 한 학기 동안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통학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것은 그 말씀들이 저를 위로해 주고 힘 주는 말씀들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말씀들이 저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씀들이 주는 그 깊은 은혜가 너무 좋아서 그 말씀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었고, 그 말씀들을 피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아프고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꾸역 꾸역 주시는 말씀들을 받아 먹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그 덕분에 제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이 고장나 있는 사람인지를 볼 수 있었고, 그 말씀으로 제 생각과 본성을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상당히 부실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라도 살고 있는 것은, 상당부분 그 시절 저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던 그 말씀들 덕분인 것이 분명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다듬는 하나님의 전지가위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로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말씀을 대할 때마다 늘 이것을 기억하시고 이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픈 말씀도 은혜가 될 것입니다. 어려운 말씀도 달콤하게 들리고, 거친 말씀일수록 더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마다, 그 말씀을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깊이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열매맺는 가지로 준비되어 왔다는 복된 말씀을 들려 주신 다음,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시는데요. 차례대로라면 그 다음에는 ‘그러니 열매를 맺으라’는 내용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는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갑자기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전체에 걸쳐 적게는 일곱 차례 많게는 아홉 차례나 똑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갑자기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으로 넘어가서 계속 그 말씀만 하신 것은 열매맺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말할 수 없이 중요하지요. 예수님은 2절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하나님께서 제해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그 가지가 밖에 버려져 마르면 사람들이 불에 던져 사른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 나오는 ‘바깥’이라든지 ‘불’이라든지 하는 말들은 예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임할 심판을 설명할 때, 사용하시는 특별한 단어들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 믿음의 열매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별 상관 없는, 성도의 인생에 덧붙여 지는 부록이나 장식품 같은 것이 아니라, 없으면 절대로 안되는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열매는 가지가 스스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과 자기 능력으로 맺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깨끗해 졌다고 해서 혼자서 발버둥치면 생겨나는 그런 것이 아니지요.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그 가지가 온전히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을 때 뿐입니다. 열매는 가지가 그렇게 줄기에 잘 붙어있어서 생겨나는 결과물이지 가지가 만들어내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하시는 대신에 ‘내 안에 거하라’고 거듭 거듭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하다가는 끝내 하나님이 바라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6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가지의 운명은 100퍼센트 열매를 맺느냐 맺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열매에만 신경쓰시는 분이시고, 열매가 없으면 가지를 가차 없이 잘라 내버리는 분처럼 여겨지고요. 물론 하나님은 열매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시니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열매를 가지고 가지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그저 열매만 좋아하시는 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4절에서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나서 6절에서 또 다시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이라고 운을 떼신 후에 그 무시무시한 심판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이렇게 이어가진 예수님의 논리는 분명합니다. 우선 누군가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많이 맺게 되어 있지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자기가 살아가고 열매 맺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끊임 없이 그리고 풍성하게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모든 풍성한 은혜들이 그 사람에게로 흘러가니 그 사람에게서 열매가 많이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에 어떤 사람이 계속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과 풍성한 은혜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런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매가 없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농부이신 하나님이 그런 가지를 잘라내 버리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반드시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열매가 없으면 안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꼭 그래야만 한다고, 안 그러면 절대로 안된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안에 거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 안에 거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이 말씀은 참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렇게만 말씀하셨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설명해 주지 않으셨으니까요. 대충은 느껴지지만 명확하게 와 닿지를 않습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예수 안에 거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이 두 가지가 불분명하면 오늘 말씀이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니까요. 그러다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 속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가지가 혼자서 살 수 있고, 혼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그 가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고사하고 살아남을 수도 없습니다. 결국에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려지고 불태워지게 되지요. 하나님도 그리고 사람들도 귀히 여겨주지 않는 천덕꾸리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만약에 포도나무의 가지가 의식이 있고 의지가 있다면, 그 가지는 포도나무에 어떻게 붙어있으려고 할까요? 적당히 되는대로 그렇게 할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그 가지는 포도나무를 자신의 생명처럼 붙들 것이 분명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도 그 일을 우선에 놓고, 늘 그것을 제일 신경쓰며 살고요. 언제나 모든 일에 포도나무를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포도나무와 교통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실제로 포도나무 가지에게는 포도나무가 전부이고, 그래서, 가지는 포도나무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은 것, 그것이 바로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신 말씀의 진짜 의미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내가 너희의 전부니까, 내가 너희의 생명이고 열매이며, 그래서 나로 인해서 너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니까 무엇보다도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단히 나를 붙잡으라고, 힘을 다해 붙잡고 절대로 놓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리 예수님께 어떤 식으로 붙어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그 분을 우리의 생명처럼 절실하게 붙들고, 믿고 의지하면서, 긴밀하게 교통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런 삶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 안에 거하는 일에 우리의 현재와 영원한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고 있나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적으로 늘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늘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것 외에는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참 생명을 누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방법이 없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다듬어져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에 자신을 내어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머물며 그 분 안에서 생명을 얻고 많은 열매를 맺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 있는 우리의 인생이 농부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로 풍성하며, 예수님의 생명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꼭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맺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다듬어져 가게 하소서.  
  3.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 안에 거하게 하소서. 
  4. 코로나 사태로 고통당하는 유럽과 미국을 위해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