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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1.22. 새벽예배 -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요한복음 59)


요0848to59 -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pdf


20121122D (#1).mp3.zip



    본문 : 요한복음 8장 48-59절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비슷한 모습이 있지만 특히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두 아이가 막 싸웁니다. 티격태격 말싸움을 합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밀리기 시작합니다. 그 아이가 생각해 보아도 싸움이 점점 불리해 집니다. 그 때 밀리는 아이가 꺼내드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바보 똥개 빡빡이야!”라는 인신모독적 발언입니다. 그러면 이기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립니다. “우왕! 엄마 쟤가 나더러 바보래! 똥개래! 빡빡이래!” 


예수님과의 논쟁에서 계속 밀리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제 가장 유치한 인신공격을 감행합니다. “너는 사마리아 인이다. 너는 귀신들렸다. 우리 말이 맞지 않느냐?” 사마리아인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종종 귀신들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상종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욕이었고 또 인격적인 모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인신모독으로 예수님을 공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유대인들의 말을 잡아서 또 다시 자신의 정당성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귀신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나의 아버지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너희가 그런 나를 무시하고 있다. 만약 내가 귀신에 들렸다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겠느냐? 너희들도 내가 나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느냐? 나는 나를 높이지 않는다. 나의 정당성을 증명해 주고 또 나를 영광스럽게 해 주실 분은 따로 있다.” 그러면서 주님은 아주 결정적인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믿고 순종하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네가 귀신들린 것이 분명하다. 아브라함도 죽었고 위대한 선지자들도 다 죽었는데 너는 네 말을 지키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너는 아브라함보다 크냐? 그럼 너는 지금 너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너는 미친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장면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 장면은 처음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에서 오고 갔던 그 답답했던 대화의 장면과 너무 많이 닮아있습니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일만 생각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지만 니고데모는 땅의 일에만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하늘을 이해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영생도 거듭남도 결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라’라는 말씀은 영생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몸의 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에만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껏 이미 아브라함과 죽은 선지자들을 들먹이면서 그들과 예수님을 비교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너의 말을 지키면 죽지 않는다고 하니 그렇다면 아브라함보다 크냐고 그러면 너는 너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 처음에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자신의 진실됨을 넌지시 이야기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선지자 중에서도 가장 큰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미래의 일을 알려주셨으며 아브라함은 그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을 알려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끄집어 내셔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믿음처럼 아브라함은 미래의 일들을 알고 또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바라보았던 것은 바로 나다, 그가 그렇게 보기를 소원하다가 보았던 것은 바로 내가 이 땅에 와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 의지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미 말한 것처럼 아브라함 또한 죽은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아브라함은 결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구원과 영생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죽음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대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혈통적으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에만 의지하고서 그것을 자신들을 위한 구원의 근거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그렇게 의지하는 아브라함도 결코 구원자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구원자를 기다리며, 구원을 소망하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결국 그 구원자를 보았다. 내가 구원을 이루는 것을 믿음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참으로 기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너희도 내 말을 듣고 믿고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래야 진실로 기뻐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인간들은 아무리 훌륭해도 다 자기 죄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신앙적인 위인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전혀 소망을 둘만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아브라함 이전부터 계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렇게 보기를 소망하다가 드디어 보게 되었던, 그래서 큰 기쁨에 이르렀던 오시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고 또 영생의 참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 속에서 그 분을 바라보고 그 분을 의지하는 것은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그 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 표현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믿고 거기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며,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분의 말씀에만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 때, 우리는 구원의 참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의 영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현실적인 은혜도 우리가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라야 진정한 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이 땅의 복들 또한 영원한 하늘의 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생에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관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우리 주님의 말씀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게 약속된 영생의 복을 붙드시기를 반드시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소망하던 것을 보는 참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