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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2.12. 새벽예배 -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요한복음 76)


요1145to53 -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요한복음 7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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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3년 2월 12일 화요일

본문 : 요한복음 11장 45-53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던 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이유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본문은 사람들의 반응을 믿음과 불신앙의 기준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이 대체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과연 불신앙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장애물들을 넘을 때 참된 믿음에 이를 수 있는지를 또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과 다른 복음서들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불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참된 믿음으로 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먼저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본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래도 그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놀라운 이적을 행하신 목적에 맞춰서 올바른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시는 이유,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주시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두 분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전보다 더 온전한 믿음, 더 견고한 믿음에 이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그런 일들을 보게 해 주시고 또 경험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면서 우리에게 진짜로 주시기를 원하는 복은 바로 믿음의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나사로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그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믿음만이 구원의 통로요, 은혜의 통로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일을 경험하게 해 주시고 또 은혜를 주실 때마다 그런 경험들을 하나님을 더 온전히 믿는 믿음의 재료들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은혜들을 믿음으로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나사로 사건을 목격했던 많은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일을 목격하고도 전혀 다른 반응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에게로 가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알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은 이들의 기록을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과 정반대 편에 놓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것을 불신앙적인 반응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사로의 일을 보고 나서 이들이 보인 반응은 그 일을 바리새인들에게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죠? 이렇게 놀라운 일을 눈 앞에서 보았으면서도 어떻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고발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이것이 불신앙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불신앙이 의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지 않기로 작정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믿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주님이 다시 오셔도 자기가 헛것을 보고 있다고 믿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자신이 스스로 그런 마음을 먹고 있다는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가 가장 심각했던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보고를 받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대책회의였습니다. 의제는 이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도 예수님이 아주 많은 표적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표적들이 구약성경의 메시야에 대한 기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고 믿어야 합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전혀 그런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겉으로는 아주 경건하고 믿음이 좋아 보였습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메시야를 소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전혀 그런 것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급한 상황이 되니 그것이 그대로 드났습니다. 진리와 믿음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의 임무로 삼아야 할 그들이 자신의 자리와 가진 것들, 그리고 그것을 보장해 주는 환경을 지키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예수가 메시야가 맞냐 아니냐를 판단하고 그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설왕설래 중에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서 거기 모인 사람들은 그 때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 방법을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 나사로 사건에 대해서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고발했던 나사로 사건의 목격자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최고의 이적을 목격하고 또 전해들었으면서도 믿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으로부터 더 멀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먼저 예수님을 바리새인들에게 고발한 유대인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들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그것을 통해 바리새인들에게 무언가 얻기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의 인정이나 그들과의 친분 혹은 현실적인 유익같은 것들 말입니다. 나사로를 살릴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사로를 알고 있었던 친척이나 지인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사로를 살려준 예수님을 고발할 정도면 그 일을 통해 무언가 크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다음에는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입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말 속에서 이미 이들의 최대관심사가 들어 있으니까요. 예수님을 고발한 유대인들이 무언가 얻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면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위치와 권력, 그리고 특권들을 놓치게 될까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 꼭 얻기를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고 또 꼭 지키고 싶어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집착이나 욕심이 거기 더해지면 그것은 불신앙의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키워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속에 있는 이런 모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우리가 혹시 우리의 믿음 보다도 더 가지기를 소망하고 또 지키기를 원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 없더라도 항상 그 보다 앞선 자리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놓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믿음의 재료로 주신 것들로 더 든든한 믿음의 집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면,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안다면 우리는 그 일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이기심과 집착이라는 장애물을 꼭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거기 걸려넘어지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우리 인생에서 보여주시는 것들을 통해 꼭 보아야 할 것을 보며 항상 더 나은 믿음, 더 풍성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