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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3.18. 새벽예배 -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사순절 3-2)



5. 눅2224to26 -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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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누가복음 22장 24-26절



만약 사람들이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지 않고 낮추려고 하거나 적어도 그저 자기 자리만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평화롭고 기쁨이 넘치며 불안함과 두려움이 사라진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높이려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섬기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훨씬 더 편안해 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렇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런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스스로를 낮추면 사람들이 자신을 존중해 주기 보다는 그 사람을 밟고 위로 올라서려고 한다고, 그래서 낮아지고 섬기지 못하겠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저 스스로도 그런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만약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이 그 사람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면 그 사람은 절대로 스스로를 낮출 수 없습니다.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고 때로는 무시를 당하더라도 그것보다 더 큰 그림을 보고 더 큰 가치를 위해서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자신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렇게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에 손해만 보고 불행해 지기만 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손해 볼 때도 있고 무시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그렇게 자신을 낮출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때부터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높아지려고만 하고 더 가지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싸우게 되고 그러니까 서로 경계하게 되고, 불안과 불만이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 자리였습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섬기시는 분으로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들을 위해서 시중드는 사람으로 섬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제자들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놓고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24절을 보면 “또”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우리는 이 한 글자를 통해서 이것이 제자들의 흔한 일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3년을 넘게 함께 다녔습니다. 함께 먹고, 자고 다니면서 거의 모든 일을 함께 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제자들은 얼마나 친밀하고 편안하며 또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가 되어야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런 관계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서로 시기하고 서로 질투하며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티격 태격 다투는 그런 상태로 그야 말로 몸만 같이 있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가 이렇게 망가져 버린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가 낮아지려고 하지 않고 높아지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높이지려는 사람들만 있는 곳, 서로 남들보다 더 높은 곳을 차지하려는 사람들만 있는 곳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만족할 수 없고, 서로 편안할 수 없습니다. 그 곳에 예수님께서 계신다고 해도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교회 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함께 있어도 별로 즐겁지 않습니다. 서로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기뻐하지 못합니다. 서로 견재하고 서로의 눈치를 봅니다. 이런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지려고 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대접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속한 교회를 편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교회로 만들려면 내 속에 있는 이런 마음부터 잘 다스리고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그 안에서 기쁘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주님은 이방인의 왕과 집권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방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의 왕들과 권력자들만 그렇게 할까요?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왕과 지도자들도 똑같았습니다. 그들 또한 남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은인으로 행세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방인’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말씀은 요즘 우리들이 사용하는 ‘이방인’이라는 말과 더 비슷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법칙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또 하늘나라 백성들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진짜로 따라야 할 법칙은 따로 있고 때로는 그것이 사람들이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정반대가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자신에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을지니…”라고 말하고 또 말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하늘나라 바깥에 있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우리를 향해서 하늘나라의 법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하늘나라 백성들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는 큰 자는 큰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다스리는 자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하려고 하죠.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자는 젊은 자와 같아야 한다. 그리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온 세상을 지으신 온 세상의 왕이시며, 또 지혜의 왕이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원리는 하늘나라에서만 통하고 이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탄의 거짓말에 우리가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께서 현실과 상식을 핑계로 이 원리가 아닌 세속적인 원리를 따라 행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면 그 분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막강한 힘을 가진 통치자는 될 수 있으셨겠지만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 되셨을 것입니다. 폭군은 될 수 있었을지언정 우리를 위해 고난과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돌아가신 우리의 구원자는 되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덕분에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또 지금 그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타락한 원리가 아니라 원래 이 세상을 움직여야 하는 그 원리를 따라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결국 온 우주를 구속하신 온 우주의 왕이 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가 높아지고 싶어지고 또 세상의 원리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 위에 서고 싶어질 때마다 27절의 주님의 말씀에 스스로 대답하며 또 그 말씀을 되새김질 해야 할 것입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누가 큽니까? 당연히 앉아서 먹는 자가 큽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느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서서 섬기는 자보다 큽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이시고 구원자이신 성자 하나님은 우리 중에 섬기는 자로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더 큽니까? 예수님이 더 큽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님이 더 크십니다.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묻습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큽니까? 서서 섬기는 자가 큽니까? 이제 답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라 서서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에서 가장 큰 분이신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면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종으로 섬기시다가 생명까지도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서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아지려면 더 높아지려고 애쓰며, 또 다른 사람들과 다툴 것이 아니라 낮아져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자리, 편안한 자리에만 있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불편한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일 안하고 편안하게 있을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섬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원리이며 사순절을 지내며 예수님을 묵상하는 우리들이 따라야 할 원리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낮은 섬김 덕분에 구원과 새로운 생명을 얻어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따라야 한 원리입니다. 낮아지는 사람이 있는 곳이 행복한 곳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있는 곳이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곳입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 되어서 참으로 높고 참으로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